<축구 역사상(歷史上) 최고의 축구 선수는? >이라고 물으면 그 대답으로 펠레, 마라도나의 이름을 기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야구 선수는?> 이란 물음엔 그 대답으로 베이브루스, 요기베라, 행크 아론과 같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산기 역사상 최고의 계산기는?> 라는 물음엔 어떤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
※ 최강의 계산기(연산 속도/능력 등과 같은 성능기준)가 아닌 최고의 계산기(쓰임새/활용도 등 종합/복합적인 관점)
위 물음에 대한 답으로 이 계산기의 이름을 대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휴렛팩커드(HP)의 HP-41C라는 계산기이다. HP-41C는 1979년 7월 16일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계산기로, 기존의 계산기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혁신성(revolution) 덕분에 학계 및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탄탄한 매니아 층을 형성하였다.
[사진 1] HP-41CV image from http://www.hpmuseum.org
이후, 성능이 보다 향상되어 1980년에 HP-41CV, 1983년에 HP-41CX 라는 이름으로 버전업되었고, 1990년까지 시장에서 판매되었으나 이후 단종되었다. 하지만, 이 계산기가 생산중단된지 무려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충성도 높은 사용자들이 존재한다. 계산기 수집가들의 리스트에 올라있어 이베이(eBay)에서도 제법 출몰하는 것 같다.
※ 이 글에서는 HP-41C, HP-41CV, HP-41CX 를 모두 편의상 HP-41C 계산기라고 통칭함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HP-41C 계산기는 미국의 7회에 걸친 우주왕복선 임무 수행에 지참되었는데, 이는 우주선의 메인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긴급하게 비행 궤도 및 재진입 계산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주선에 실렸던 HP-41C 계산기는 현재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미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올해는 HP-41C 계산기가 탄생한지 35년째 되는 해이다.
HP-41C 계산기는 기본적으로는 프로그램 가능한 프로그래머블 포켓 계산기(programmable pocket calculator)이다. 하지만, HP-41C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포켓) 계산기들과 완전히 차별화 되었는데,
첫째, HP-41C는 알파뉴메릭(alphanumeric)이라고 명명된 새로운 방식의 계산기 유저 인터페이스를 도입했다. 알파뉴메릭이라 함은 알파(Alpha)와 뉴메릭(Numeric)의 합성어로 계산기에서 문자(알파)와 숫자(뉴메릭)의 입출력을 모두 지원한다는 의미이다. 사용자는 아래 [그림 1]과 같이 ALPHA(알파)라고 인쇄된 토글 키(toggle key)를 통해 <알파 모드> 또는 <뉴메릭 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 (※ 계산기 ALPHA 키의 효시가 되겠다.)
1970년대 후반, 전자기술의 발달로 계산기에 탑재되는 기능들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불행히도 이 기능들을 할당해야할 포켓 계산기의 버튼 수는 한정되어 있다. HP의 경우, 포켓형 계산기의 키 갯수는 보통 35개 정도였다. 하나의 키에 한개의 기능을 담는다고 가정하면, 키 갯수가 35개일 경우, 이론상 최대 35개의 기능을 할당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약은 계산기에 쉬프트키(Shift key)를 도입함으로써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 계산기의 35개 키들 중 1개의 키를 쉬프트 키로 지정하면, 이를 통해 최대 34개 x 2 = 68개의 기능을 할당할 수 있다. 만약, 35개의 키들 중 2개의 키를 쉬프트 키로 지정하면, 두개의 쉬프트 키를 통해 최대 33 x 3 = 99개의 기능을 할당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쉬프트키를 늘려 키에 할당되는 기능들의 수를 늘리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단적인 예로, HP-67 계산기는 성능이 뛰어난 계산기였지만, 한정된 수의 버튼을 가진 계산기에 이런 식으로 다양한 기능을 할당하려다보니 쉬프트키가 3개나 되었다. 이는 계산기의 사용법을 복잡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하나의 키에 4개 이상의 기능이 할당되면 계산기의 사용은 정신없고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림 1] HP-41C 계산기 알파(Alpha) 토글 키, 이미지는 HP-41C/CV Owner's Handbook에서 발췌·편집
HP-41 계산기에 도입된 알파뉴메릭 인터페이스는 상기의 제약을 간단히 극복한다. <알파 모드>에서는 특정 기능의 이름을 타이핑하고 실행시키면 되기에, 위와 같이 계산기의 특정 키에 특정 기능을 사전에 지정할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도스(DOS) 또는 유닉스(UNIX)에서 특정 프로그램 또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명령 프롬프트(command prompt)에서 명령어를 직접 입력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이런 방식을 통해 계산기 키 갯수에 관계없이 계산기의 메모리 용량이 허용하는 만큼 거의 무제한의 기능을 계산기에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뉴메릭 모드에서는 다른 계산기처럼 쉬프트키와의 조합으로 특정 키를 눌러 해당 키에 사전에 할당된 기능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한편, 이 두가지 방식을 조합하면, 어떠한 기능(function) 또는 프로그램(program)을 특정 키에 구애받지 않고 거의 모든 키에 자유롭게 할당할 수도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유연성(Flexibility)이 극대화된다.
둘째, HP-41C 계산기는 윗면에 아래 [사진 2]와 같이 확장 모듈(Expansion Module)을 최대 4개까지 장착 또는 연결가능케 하는 확장 슬롯(expansion slot)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확장성(Expandability)이 극대화 된다.
[사진 2] HP-41CX 계산기의 확장슬롯(expansion slot), image from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HP-41_extension_module
[사진 2]의 확장 슬롯은 외부 확장 모듈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페이스로서, 이를 통해, 아래 [사진 3] 및 [사진 4]와 같은 다양한 주변기기를 HP-41 계산기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사진 3] HP-41C 계산기에 연결할 수 있는 여러가지 확장 기기들 , image from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HP-41C
[사진 4] (왼쪽) 포트 라이트(등): 41C의 전원을 이용한 간이 램프, 야간비행을 하는 조종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오른쪽) 마그네틱 카드 홀더: HP-41C 계산기에 프로그램을 입력할 수 있는 마그네틱 카드를 사진과 같이 수납하기 위한 것
Images From The HP-41 System - 30 Years Old (HP Solve Issue 16, December 2009)
※ HP-41C와 연결가능한 주변기기에 대해선 http://www.hp-collection.org/41accessories.html 사이트를 방문해볼 것을 추천, HP社와 써드파티에서 제조한 각종 저장장치, EPROM 박스 등 각종 악세사리들이 망라되어 있다. 사이트의 운영자는 잘 알려진 HP 계산기 수집가이다.
HP-41 계산기의 확장 슬롯(expansion slot)에는 [사진 3] 및 [사진 4]와 같은 같은 하드웨어 뿐만이 아니라, 아래 [사진 5]와 같이 추가 메모리 모듈 또는 어플리케이션 팩(Application Pac)이라 불리는 펑션모듈(function module)을 장착할 수도 있다. 어플리케이션 팩(줄여서 어플 팩)은 HP-41 계산기가 특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일련의 앱(프로그램)들을 저장해둔 일종의 롬(ROM)이다. 아래 [사진 5]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과정은 게임기에 특정 게임팩을 꽃는 것과 별 차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
[사진 5] HP-41 확장슬롯에 확장 어플리케이션 팩(Application Pac)을 삽입하는 과정, From Financial Decision Pac User Manual
이와 같은 유연성(Flexibility) 및 확장성(Expandability)를 바탕으로, HP-41C 계산기는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유형의 계산 어플리케이션을 포괄해낼 수 있는 일종의 계산 플랫폼(platform)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게임기의 예를 들면, 엑스박스(MS XBOX)가 액션, 스포츠, 슈팅, 시뮬레이션, 어드벤쳐 등 다양한 장르에 걸친 수많은 게임 소프트웨어들을 실행시킬 수 있는 게임 플랫폼(Game Platform)인 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보면 되겠다.
82년 어느 한 잡지에 실린 아래의 광고는 휴렛팩커드社가 실제로 마케팅(marketing) 측면에서도 시장에서 HP-41C를 단순한 계산기에 국한시키지 않고, 일종의 계산 플랫폼으로 포지셔닝(positioning) 시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진 6] 82년 어느 한 잡지에 실린 HP-41C의 광고, image from http://www.hpmuseum.net/display_item.php?hw=635
아래의 [표 1]은 휴렛팩커드社가 HP-41C용으로 발매한 특수 목적용 계산프로그램들(※ 게임기로 비유하자면, 게임 소프트웨어)을 정리한 것이다. HP는 [표 1]과 같은 특수 목적용 계산 소프트웨어들을 라이브러리 솔루션과 어플 팩, 이렇게 두가지 형태로 판매했는데,
[표 1] Hewlett-Packard에서 출시한 User Library Solutions 및 Application Pacs,
※ Data from HP41.org library page
User Library Solution(라이브러리 솔루션)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성된 솔루션 프로그램들을 여러 장의 바코드에 담아서 사용 설명서(user manual)와 함께 판매한 소프트웨어 상품인 반면, HP Applications Pac(어플 팩)은 작성된 솔루션 프로그램들을 위의 [사진 5]와 같이 HP-41C의 확장 슬롯에 바로 장착될 수 있는 모듈(module), 즉 일종의 롬팩(ROM Pac)에 담아서 사용 설명서(user manual) 및 오버레이(overlay, ※ 오버레이에 관해서는 말미에 자세히 설명)와 함께 판매한 소프트웨어 상품이 되겠다.
[표 1]을 한눈에 보더라도, HP-41C가 다양한 목적과 유형의 계산 어플리케이션들을 실행할 수 있는 계산 플랫폼(platform)임을 알 수 있다.
HP-41C 용 계산 어플리케이션은 [표 1]에 정리된 HP社에서 제작된 것들 이외에도 다른 여러 써드 파트(Third-Parties)들이 제작한 것들도 있었다. 아울러, 일반 유저들은 필요에 따라 스스로 프로그램들을 작성할 수 있었고, 이렇게 작성된 프로그램들 중에 충분히 범용성을 가지고 유용한 것들은 사용자 커뮤니티(user community) 등을 통해 다른 유저들과 공유되었다.
※ PC용 HP-41C 계산기 에뮬레이션(emulation) 프로그램인 V41의 제작자인 Warren Furlow가 운영하는 hp41.org 사이트에는 휴렛팩커드社, 각종 써드파티(third-parties) 및 여러 유저들이 작성한 HP-41C 용 계산 소프트웨어들이 거의 총망라되다시피 집대성되어 있다. 소프트웨어 제작사에서 배포한 유저 매뉴얼도 함께 제공되고 있어 HP-41C 계산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정리하자면, <어떠한 라이브러리 솔루션을 메모리에 로드시키느냐> 또는 <어떤 어플 팩(Pac)을 확장 슬롯에 장착하느냐>에 따라서, HP-41C 계산기는 전혀 다른 용도의 계산기로 변신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확장 슬롯에 [표1]의 재무팩(Finance Pac)을 꽂으면, 재무계산기로, 부동산팩(Real Estate Pac)을 꽂으면 부동산 계산기로, 수학팩(Math Pac)팩을 꽂으면 수학계산기로, 통계팩(Stat Pac)을 꽂으면 통계계산기로, 증권팩(Securities Pac)을 꽂으면 주식, 채권 등과 관련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증권 계산기로 변신한다. 이런 식으로 과학기술용 계산기로, 공학용 계산기로, 기계 설계 계산기로, 석유 유속계산기 등등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사진 7] 미드 프리텐더 제로드의 포스터, image from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The_Pretender_2001
이렇게 말하니, 문득 2000년 초반 재밌게 시청했던 프리텐더(the pretender)라는 미드가 생각났다. 이 미드의 각 에피소드는 스타워즈의 오프닝 같이 푸른색 글자 스크롤이 쭉 올라가면서 다소 긴장감 있는 톤의 남성 나레이션이 함께 흘러나오며 시작되었다.
There are Pretenders among us. 우리가 사는 곳에는 '프리텐더'들이 존재한다.
Geniuses with the ability to becom anyone they want to be. 자기가 되고 싶은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천재들이다... (후략)
미드 <프리텐더> 속 주인공은 극중에서 어떤 직업의 사람으로도 변신 가능했는데, 계산기 월드에선 HP-41C도 미드 <프리텐더>의 주인공만큼이나 다재다능(多才多能, Versatility) 하다.
참고로, 아래 [사진 8]은 <Geometry라는 User Library Solution>에 수록된 여러 프로그램들 중에서 SINE PLATE SOLUTION 등을 구하는 프로그램 부분을 스캐너로 발췌한 것이다. 좌측이 소스코드이고 우측이 HP-41C의 바코드 리드/라이트 모듈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입력받을 수 있도록, 소스코드를 바코드 형태로 변환해놓은 것이다. [사진 8]을 살펴보면, 소스코드를 1~4행, 5~7행, 8~15행, 16~24행 등과 같이 분할하여 바코드로 구현해놓았고, 총 100행의 소스코드를 담는데 ROW 1 부터 ROW 14까지 14개의 바코드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일면 신기하기까지한데 , 당시(1980년대 무렵)에는 이러한 방식이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
[사진 8] Sine plate solutions, coordinate of a point, position and slope of an inclined hole 프로그램
From HP-41 Users' Library Solutions, Geometry 유저 매뉴얼, Hewlett-Packard
플랫폼(platform)으로서의 HP-41C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닌텐도(Nintendo)의 8비트 게임기인 NES와 비교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표 2] 생태계(Ecosystem) 측면에서 바라본 HP-41C와 닌텐도 NES
◇ 하드웨어의 이름: HP-41C(CV/CX) |
◇ 하드웨어의 이름: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
' 하드웨어 개발회사: Hewlett-Packard(휴렛팩커드)
' 써드파티 하드웨어개발사: - HP-41C와 호환되는 프린터 등 여러 주변기기 판매
' HP가 직접 개발한 계산 프로그램:
- Advantage Pac 등 다수 프로그램
' 써드파티가 개발한 계산 프로그램:
- 여러 유형과 목적의 다수 계산프로그램
' 프로그래밍 동호회 등과 같은 유저 커뮤니티 생성 및 확산
' 사용자 개발 프로그램:
- 사용자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직접 프로그램을 작성, 배포 및 공유 가능
' 사설 수리업자 및 개조업자의 영업활동 존재
' 중고 시장 등 세컨 마켓(second market) 형성 등 |
' 하드웨어 개발회사: Nintendo(닌텐도)
' 써드파티 하드웨어개발사: - NES본체와 호환 게임컨트롤러 등 여러 주변기기 판매
' 닌텐도가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
- 슈퍼마리오 등 다수 게임소프트
' 써드파티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 여러 장르의 다수 게임소프트
' 게임동호회 등과 같은 게임 커뮤니티 생성 및 확산
' 게임유저가 개발한 게임소프트웨어:
- NES 개발키트를 통해 직접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게임을 작성, 배포 및 공유 가능
' 사설 수리업자 및 개조업자의 영업활동 존재
' 중고 시장 등 세컨 마켓(second market) 형성 등 |
위의 [표 2]에서 정리한 바에 따르면,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게임기의 경우,
NES 게임기(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하드웨어 개발사, 직접 배포하는 소프트웨어, 써드파티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 개발사, 사용자 집단 등이 어우러져 일종의 생태계(ecosystem)를 형성하는데, HP-41C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기본 구도(構圖)는 현재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 및 앱스토어 생태계와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구도가 형성되면 이를 주도한 기업에겐 상업적 성공이 동반하게 되는데, HP-41C 중심의 생태계를 형성해낸 휴렛팩커드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HP-41C 계산기의 또다른 독창적 요소인 오버레이(Overlay)에 대해 알아보자면,
[그림 2] HP-41C의 오버레이(overlay) 설명을 위한 게임 컨트롤러(controller) 비유(metaphor)
우선, 오버레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 2]의 게임기 컨트롤러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게임기의 게임 컨트롤러를 보면, [그림 2]와 같이 컨트롤러의 오른쪽에 위치한 4개의 버튼에 각각 A, B, X, Y 라고 인쇄되어 있는데, 게임기에서 실행되는 게임에 따라 이러한 4개의 버튼에는 각각 다른 기능들이 할당되게 된다. [그림 2]의 사례 1)의 비행기 조종 슈팅 게임에서는 A, B, X, Y 버튼에 대해 차례로, 총알, 폭탄, 회피, 스페셜 폭탄 기능이 각각 할당되었다. 한편, [그림 2]의 사례 2)와 같이 격투 게임팩을 장착했더니 이번엔 A, B, X, Y 버튼에 각각 주먹, 킥, 점프, 스페셜 기술이 할당되었다.
종류를 달리하는 게임팩이 게임기에 장착될 때, 게임 컨트롤러의 버튼들에 다른 기능이 할당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류를 달리하는 어플팩이 HP-41C 계산기에 장착될 때, 계산기의 키들에는 다른 기능이 할당된다.
예를 들어, HP-41C 계산기에 [표 2]의 <Home Management Pac>이라는 어플 팩이 장착되어, <Travel Expense Record>라는 프로그램이 실행되면, HP-41C 계산기의 최상단 5개 키에는 차례로 INIT, INPUT, TOTALS, DAILY, READ 기능이 각각 할당된다. 그런데, [표 2]의 <Financial Decision Pac>이라는 어플 팩이 장착되면, 이번엔 최상단 5개 키에 차례로, N, I, PV, PMT, FV 기능이 각각 할당된다. 정리하면 아래의 [그림 3]과 같다.
[그림 3] 다른 종류의 어플 팩(Application Pac)을 HP-41C 계산기에 장착함에 따라 계산기의 키에 할당되는 기능도 달라진다.
주의해야할 것은 [그림 3]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INIT, INPUT, TOTALS, DAILY, READ 또는 N, I, PV, PMT, FV 기능은 HP-41C 계산기 위에 실제로 인쇄된 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HP-41C 계산기에는 아래 [그림 4]와 같이 a,b,c,d,e 라는 문자가 인쇄되어 있을 뿐이다.
[그림 4] HP-41C 계산기에 실제 인쇄된 문자
이는 [그림 2]의 게임기 컨트롤러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2]의 사례 1) 슈팅게임에서 4개의 버튼에 각각 총알, 폭탄, 회피, 스페셜 폭탄 기능이 할당되었다 하더라도, 실제 게임컨트롤러의 버튼에 인쇄된 문자는 여전히 A, B, X, Y 이다. 게이머는 A, B, X, Y 4개의 버튼에 어떤 기능이 할당되었는지를 머리 속에 외우고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그림 2] 사례 1) 2)의 슈팅게임 또는 격투 게임의 경우엔, 게임 컨트롤러의 버튼 갯수는 4개에 불과함으로 게이머가 각 키에 할당된 기능을 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HP-41C 계산기의 키의 갯수는 35개나 되기 때문에, 35개의 키에 할당된 기능을 외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버레이(overlay)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오버레이라 함은 아래 [사진 9]와 같이 HP-41C에 탈착될 수 있는 얇은 판인데, 그 표면에는 문자가 인쇄되어 있다. [사진 9]와 같은 모양으로 특정한 구조물에 장착되는 구멍뚤린 판을 흔히 페이스 플레이트(face plate)라고 부른다. 결국, 오버레이란 일종의 HP-41C 계산기용 탈착형 페이스 플레이트(face plate)라고 보면 되겠다.
위 [그림 4]에서 <빨간색 점선 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오버레이를 탈착 시 분리/고정 역할을 담당하는 파트(part)가 되겠다. 앞에서 정리한 [표 1]에 수록된 HP의 어플리케이션 팩(Application Pac)들 중 하나를 구매하면, 해당 어플 팩에 수록된 솔루션 프로그램들이 계산기 키에 할당한 기능들이 실제로 인쇄된 오버레이(overlay)가 함께 제공된다. 이제 유저가 해야할 일은 기존에 장착된 오버레이를 계산기 본체에서 분리한 다음, 어플 팩에서 제공하는 오버레이를 새롭게 장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버레이를 교체함으로써, 유저는 확장슬롯에 새로운 어플 팩을 삽입하여 35개의 계산기 키에 기존과 다른 새로운 기능들이 할당된다 하더라도, 계산기의 어느 버튼에 어떤 기능이 새롭게 할당되었는지 외울 필요가 없다.
[사진 9] HP-41용 오버레이(overlay)들, A,B는 특정 어플팩에 함께 제공된 오버레이, C,D는 일반용으로 별도 판매되던 오버레이
Images From The HP-41 System - 30 Years Old (HP Solve Issue 16, December 2009)
아래 [사진 10]은 HP-41C의 확장 슬롯에 [표 1]의 어플 팩들 중 <Financial Decision Pac>을 삽입한 다음,
HP-41C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던 오버레이를 분리하고, 대신 <Financial Decision Pac> 제품에 번들(bundle)로 제공되는 Money 어플용 오버레이를 장착한 모습이다. [사진 10]과 같이 오버레이를 교체해놓고 보니, 계산기의 각 키에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기능들이 할당되었음이 한 눈에 쉽게 파악된다.
[사진 10] HP-41용 기본 오버레이(overlay)를 Financial Decision Pac의 Money 어플용 오버레이로 교체장착한 모습
Overlay Image made by Warren Furlow from HP41.org
지금까지 HP-41C 계산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솔직히, 처음 구상했던 것보다 글이 상당히 길어진 측면이 없지 않다. 의외로 국내 포털 및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HP-41C 계산기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것 같아 조금은 구체적으로 설명하다보니 빚어진 결과이다.
구글링을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HP-41C를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계산기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계산기가 나온지 35년이나 되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베이에서 거래되는 경매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HP-41C 계산기가 그만큼 상당히 매력적인 계산기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기심에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상 작동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계산기를 이국만리로부터 배송료에 관세까지 더해가며 구매하기에는 다소 부담이 된다. 또한, HP-41C 계산기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주변기기 및 확장 어플 팩들을 같이 구매해야하는데, 이를 위해 추가로 부담해야할 금전적 지출 역시 제법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위와 같이 계산기 기능에 대해 호기심은 드는데 그렇다고 막상 구매하자니 다소 부담되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HP-41C 계산기 에뮬레이션 프로그램(emulation program)을 사용해보는 것도 상기의 딜레마 해소를 위한 좋은 시도라고 생각된다. 워낙 유명한 계산기이다보니, 에뮬레이션 프로그램도 각종 OS별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HP-41C 에뮬레이션>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팅을 통해 살펴볼까한다.
(레퍼런스 사이트)
O www.hp41.org, HP-41C/CX/CV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집대성하여 제공
O http://www.hpmuseum.org/hp41.htm, 배경지식 및 각종 레퍼런스 제공
O http://www.hpmuseum.net/ 기본정보 및 관련문서 pdf 파일 제공
O http://en.wikipedia.org/wiki/HP-41C, 배경지식 및 HP-41C 관련 각종 사진
O eBay.com, <HP-41>을 키워드로 검색, 계산기, 각종 Pac 및 유저라이브러리 솔루션, 확장장치 등에 대한 정보
O http://www.hp-collection.org/41accessories.html HP 계산기 콜렉터가 수집한 HP-41 주변기기 및 악세사리
O http://www.hpcc.org/calculators/hp41.html HP 계산기 및 핸드헬드 클럽
(참고문헌)
1. HP-41C/CV Owner's Handbook and Programming Guide, 1980, Hewlett-Packard
2. HP-41 Operating Manual, 1980, Hewlett-Packard
3. Hp-41CX Owner's Manual Volume 1:Basic Operation, 1983, Hewlett-Packard
4. http://www.hp41.org/ 에서 제공되는 각종 자료 및 V41 에뮬레이터, Warren Furlow
5. HP Solve newsletter Issue 16, "The HP-41 System - 30 Years Old", December 2009, Richard J.Nelson
6. An Easy Course In Programming The HP-41, 1987, Ted Wadman and Chris Coffin, Robert Bloch
7. HP-41C Financial Decision Pac User Manual, 1984, Hewlett-Pack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