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LX에는 상당히 훌륭한 재무계산기가 탑재되어 있다. 나는 이 계산기 프로그램을 참 좋아한다. 이러한 호감은 호기심으로 발전하고 증폭된 호기심은 짬짬이 관련 정보의 단편들을 찾아 탐색하는 구글링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HP에서 200LX를 개발한 부서인 코밸리스 사업부(Corvallis Division)와 관련된 것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렇게 살펴본 것들 중에는 코밸리스 사업부에서 만든 계산기에 대한 정보 및 배경지식도 있다.


구글링을 통해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때로는 유저 커뮤니티의 글을 읽다가 추천 링크에 이어 또다른 링크를 타고 넘는 과정에서, HP 계산기 수집가들의 홈페이지도 방문해보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국제 계산기 수집가 협회(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alculator Collectors)라는 것도 있고, 포켓 계산기 수집가를 위한 완벽 가이드북(The Complete Collector's Guide To Pocket Calculators) 같은 책도 있다. 아마존의 정보에 따르면, 이 책의 저자가 계산기 수집 관련 잡지도 발행했던 것 같다. 이외에도 계산기를 수집할 때, 구입난이도 및 적정가격을 알려주는 레퍼런스 사이트도 있다. http://www.hpmuseum.org/collect.htm


참고로, 해외 계산기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수집가는 HP 계산기를 전문으로 수집한 Matthias Wehrli 라는 사람이었다.

※ Matthias Wehrli의 HP 계산기 컬렉션 홈페이지: http://www.hp-collection.org/


HP 계산기 컬렉터들의 수집목록은 http://www.hpmuseum.net/exhibit.php?class=2&cat=14 에 잘 정리되어있다. 이 목록에는 1972년부터 1990년까지 29년간 HP社에서 출시된 47종의 계산기들이 담겨있다.[각주:1]

계산기별로 링크된 추가정보를 읽다보면, 사람마다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각각 다른 계산기를 매력적으로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

내 경우에는, 상기 링크된 목록에 수록된 계산기들 중에서 가장 가치있어 보이는 것은 HP-35 라는 계산기였다.


내가 이런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첫째수집가에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물건이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HP-35는 HP社 최초의 포켓형 계산기이다.


[사진] HP 최초의 포켓계산기 HP-35(1972), 이미지 from http://gizmodo.com/5306520/


HP-35가 시장에 등장하기 이전에

계산기 시장을 주름잡던 계산기는 덩치도 크고 가격도 비싼 데스크탑 형태의 계산기였다. 가장 유명한 제품은 1968년 처음 출시된 HP社의 9100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유투브 영상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동영상] HP 9100 Calculator, 출시년도 1968년, 최초가격 4900달러


HP-35는 이로부터 불과 4년 후인 1972년에 출시되었다. 당시 전자기술의 발달속도가 어느만큼 빨랐던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둘째, HP-35는 관련된 역사적인 <에피소드>가 존재하는 계산기라는 점이다.


(1) HP의 공동창업자인 빌 휴렛(Bill Hewlett)의 비전과 혜안에 의해 탄생한 계산기

스마트폰의 대중화 문을 열어젖힌 제품이 아이폰이고, 여기에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 비전이 역할을 크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포켓형 계산기의 대중화에 첫 발을 내딛은 제품이 HP-35이고, 여기에 HP의 CEO인 빌 휴렛의 비전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HP-35의 기획 단계에서 당시 기술 수준은 사실 HP-35를 개발해내기에는 덜 성숙한 상태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장조사는 포켓형 계산기의 시장성 자체에 대해 회의적/부정적 전망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빌 휴렛의 눈에 비친 포켓형 계산기의 잠재성(potential)은 남달랐던 것 같다. 그는 HP-35 개발을 밀어붙였고, 개발팀을 직접 독려하여 개발에 착수한지 불과 2년만에 시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당시 HP에서 평균적인 개발기간은 3~5년

결과는 속된 말로 <대박>을 쳤는데, 출시 첫해인 1972년 HP社 전체 영업이익에서 HP-35 계산기 단일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자그만치 41%나 되었다. 이듬해인 73년엔 30만대의 포켓 계산기를 판매하였고, 74년에는 포켓 계산기 분야에서 1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렇듯, HP-35 계산기는 어찌보면 HP가 이후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발판이 된 제품이라 할 수 있다.[각주:2]



(2)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계산기

애플의 창업스토리를 읽다보면, 부족한 창업자금 마련을 위해, 잡스는 폭스바겐 자동차를, 워즈니악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계산기를 팔아야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워즈니악이 자금 조달에 보태기 위해 팔았던 계산기는 HP-65[각주:3] 이지만, 훗날 워즈니악이 실제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기기였다고 회고한 계산기는 HP-35 였다.[각주:4]



(3) IEEE Milestones List에 등재된 계산기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아이트리플이, 전미 전기전자 기술자 협회)는 전기전자공학 역사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기술적 성과물(historical achievement)을 IEEE Milestone으로 선정하여 IEEE Milestone List에 등재하고, 해당 기술적 성과물에 대해 IEEE Milestone Plaque라는 기념금속판을 수여한다. 맥스웰 방정식(Maxwell's equations), LCD(Liquid Crystal Display), VHS 비디오 리코딩 미디어, CD(Compact Disc) 오디오 플레이어 등이 마일스톤 리스트(Milestones List)에 등재되어있다. IEEE는 2009년 4월 14일 HP-35 계산기를 IEEE Milestone으로 선정하였다.[각주:5] 

[사진] IEEE Milestone Plaque for HP-35, image from vintagecalculators.com

참고로, IEEE Milestone List에 등재된 다른 기술들은 아래에 링크된 IEEE Milestone 페이지 또는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http://www.ieeeghn.org/wiki/index.php/Milestones:List_of_IEEE_Milestones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IEEE_milestones



한편, <수집대상이 얼마나 희소성이 있는가?>의 여부도 수집가에겐 중요한 고려사항일터인데,

사실, HP-35는 출시 당시 워낙에 많은 수량이 판매되어 희소성이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는 계산기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베이에 출몰하는 HP-35의 가격이 제법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HP-35 중에서도 전원버튼 오른쪽 옆에 좁쌀만한 크기의 빨간색 라이트가 달려있는 초기형 모델은 희소성이 매우 높다. 전원을 켜면 여기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수집가들은 이러한 초기형 모델을 다른 HP-35 계산기들과 구분하여 <HP-35 red dot>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사진] HP-35 red dot 버전, 전원버튼 옆에 빨간색 작은 라이트가 보인다. 계산기 전원을 켜면, 여기에 빨간불이 들어온다고 한다.
image from 
http://www.hpmuseum.org/35first.jpg


정리하면, <HP-35 red dot> 은 <희소성>이라는 수집가적 니즈를 충족하는 동시에, <최초>라는 수석어가 붙는 계산기이며, 여기에 더해 <역사적 에피소드>까지 존재하니, 훌륭한 수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HP-35와 관련된 기타 정보>

1. 최초의 포켓형 계산기임에도 불구하고, H-01과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고, HP-35라고 명명된 이유는 버튼의 갯수가 모두 35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HP-35라는 이름은 35개의 키가 달린 (포켓) 계산기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 HP-01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77년에 출시된 시계형 계산기로, 수집가들이 포켓형 계산기 범주로 분류하는 것들 중에서는 HP社에서 19번째로 시장에 출시된 제품이었다.


2. HP-35의 개발부서는 캘리포니아 소재의 APD(Advanced Product Development)였다. HP-35의 성공 이후, 74년 HP는 오레곤주의 코밸리스 지역에 145 에이커의 땅을 구매하였고, APD는 근거지를 코밸리스로  옮기게 되었다. 이후 APD는 부서의 이름을 코밸리스(Corvallis Division)로 바꾸게 된다. 훗날 200LX을 개발하게 되는 바로 그 사업부가 되겠다.


3. HP社는 2007년 HP-35 계산기가 탄생한지 35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HP-35s 모델을 출시하였다.

[사진] HP-35s, 2007년 7월 12일 출시, 전원으로는 동전형 전지인 CR2032 2개가 수납된다. 

이미지 from http://en.wikipedia.org/wiki/HP_35s

  1. 90년 이후에 출시된 계산기들은 이 사이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본문으로]
  2. http://www.hpmuseum.net/divisions.php?did=6 [본문으로]
  3. http://www.hpmuseum.org/cgi-sys/cgiwrap/hpmuseum/archv016.cgi?read=103236, 스티브 워즈니악 자서전 중 일부 발췌 [본문으로]
  4. http://gizmodo.com/5306520/my-most-memorable-gadgets-by-steve-wozniak [본문으로]
  5. http://www.ieee.org/about/news/2009/14april_1.html http://www.ieee.org/documents/hp35_milestone_release.pdf [본문으로]
Posted by 200LX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