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님이 지으신 책 중에 <디지로그>라는 책이 있다. 출간 당시 컨버전스(convergence) 현상이 정보/통신/사회/기술 등의 분야에서 이슈화 되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제법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2006년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이어령 교수님은 정말 언어의 연금술사이구나! 어떻게 어떠한 현상을 한글로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을까?」라는 생각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2006년에 나온 책이지만, 얼핏 대충 훑어만 보았는데도 눈을 확 잡아 끄는 표현들을 책의 이곳저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간을 내어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출간된지 6~7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도움이 될 내용들을 제법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어령 교수님은 어떠한 현상을 보고 그 현상의 중심을 꿰뚫는 가치를 명쾌하게 언어로 설명해내는데 있어서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 탁월하신 분이라 생각된다.


책을 훑어본 것은 잠깐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디지로그(Digilog)」라는 책[각주:1] 본문 중 「오관으로 먹는 정보의 맛」이라는 대목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오관[五官]이라 함은 눈, 귀, 코, 혀, 피부 이렇게 다섯가지 감각 기관을 의미한다.[각주:2]

정보를 시루떡에 비유해서 설명하셨는데, 그 비유가 참으로 멋져보인다. 발췌를 해서 소개하자면,


[사진] JPG image from 위키피디아(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Sirutteok


... 손으로 고물을 만질 때의 촉감, 호박고치의 구수한 냄새, 이로 씹을 때의 너무 딱딱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저항, 눈으로 보이는 시루떡 켜가 그려내는 기막힌 미각의 지층(地層), 그리고 지열처럼 훈훈한 따사로운 온감, 시루떡에는 이처럼 멀티미디어의 다양한 디지털 정보와 겨룰 만한 오관의 즐거움과 행복이 들어있다. 시루떡만이 아니라 그러한 오관을 통해 가래떡이든 인절미든 경단이든 그 형태와 감각의 차별화에 의해 정보는 세분화한다. 

 개짖는 소리, 댓문을 여는 소리, 신발을 끄는 발자국 소리, 이렇게 청각으로 시작한 시루떡은 보고 냄새 맡고 손끝으로 느끼고 마침내 어금니로 씹는 말랑말랑한 맛과 정보로 변해 온몸으로 전달된다. 오관이 총동원된 어금니의 미디어는 디지털 정보가 범접할 수 없는 미각 미디어의 특성이다.  ... (후략)


나는 애플사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어령 교수님이 위와 같이 표현하신 <오관으로 먹는 정보의 맛>의 가치가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디지털 제품이지만, 사용할 때마다 소소하게 무엇인가 아날로그적 사용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인가 삭막하지않고 따뜻한 느낌이다. 이런 <애플社 제품 특유의 물건 쓰는 맛>의 느낌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소위 맥매니아 또는 폐인의 경지까지 이른 사람들까지 양산하는 것이리라. 물론 나는 맥매니아는 아니지만... 맥(Mac) 매니아 또는 폐인들이 애플 제품에 왜 그렇게 컬트적 애정과 열정을 보이는지 그 심정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어령 교수님이 표현하신 <오관으로 먹는 정보의 맛>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말이다.


이어령 교수님이 위와 같은 글을 쓰신 시점은 2006년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제품이 나오기 훨씬 전이다. 

나는 이어령 교수님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력에 다시 한번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다.

  1. 2006년 출간, 출판사: 생각의 나무, 디지로그는 디지털 + 아날로그의 합성어 [본문으로]
  2. 네이버 국어사전의 정의 [본문으로]
Posted by 200L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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