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죽을 통해서 신뢰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다.
경영이론탐구 2013. 2. 28. 23:33 |2000년대 초반 대학로에서 1년정도를 일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참 좋았던 것 같다. 대학로 특유의 널직한 보행자 도로를 걷다보면 여기저기 눈에 띄는 다양한 연극 및 각종 먹을거리 간판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여러 맛집이 많았지만, 그 중에 좋아했던 것 중 하나가 본죽이었다. 지금이야 거리거리마다 본죽이라는 상호를 흔히 접하게 되지만, 2003년도만 하더라도 본죽은 혜화동의 명물 음식점 중 하나였을 거다.
죽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서, 지나는 길에 한번 들렸다가 죽이 푸짐하고 뜨끈뜨끈한데다 맛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서 속이 허전할때 종종 찾곤 했다. 1층과 2층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갈때마다 손님들이 붐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처의 서울대학병원 입원 환자들에게 특히나 인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위 사진은 2003년 당시 퇴근길에 찍었던 사진이다. 위 사진의 혜화동 점포가 아마 본죽 1호점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후로 몇년후 본죽이 프렌차이즈화 되면서 점포수가 급격히 늘고, 집근처에도 본죽 점포가 생겼다. 시간이 날때면 부모님을 모시고 집근처 본죽에 들러 죽을 먹곤 했다. 일주일에 2~3회 정도 죽집을 찾았으니, 꽤 단골고객에 속했을거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서 불쾌한 뉴스를 접했다. 손님이 먹다 남긴 죽을 재활용... 더군다나 뉴스에 나온 그 죽은 내가 평소 즐겨먹던 바로 그 죽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죽에 가지 않았다.
그 후 근처를 지날때마다 가끔 점포 내부를 보곤 하는데, 내가 눈대중으로 보기에는 예전에 비해서 손님수가 줄은 것 같다. 예전에는 밥때가 되면 자리가 늘 꽉 찼었는데, 요즘에는 빈자리가 제법 눈에 띄는 것 같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 느낌이기 때문에, 정말 그러한가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 생각난 김에 오늘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김철호 본죽 대표 쇄신 또 쇄신(2012.12.4 기사)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669178
구글 검색을 통해 약 세달전쯤 발행된 위 기사를 읽었다. 확실히 죽 재활용 사태가 언론에 보도된 후에 매출하락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Trust)의 무서움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에 의하면 신뢰라는 것은 구축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일단 신뢰가 형성되면 유무형의 재화에 있어서도 그것을 좀 더 많이 생산해낼 수 있게하는 실제적인 가치를 지니는 일종의 무형의 자산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질때는 한 순간이기때문에 그 관리가 매우 까다로운 자산에 속한다. 1
<신뢰경영>이라는 용어도 이러한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리라.
많이 또는 자주 먹으면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서 패스트푸드 피자, 햄버거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은 이런 면에서 고객의 기대수준과 실제 제공받는 가치가 꽤 일치한다.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라 전자제품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품 또는 서비스에 있어서, 고객이 소비 전에 기대하던 바와 실제 제공받는 가치 수준의 괴리를 느끼는 순간 해당 기업은 타격을 받게 된다.본죽의 경우에도 이미 슬로우 푸드라고 대대적인 광고까지 동반하여 고객의 마인드 속에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기때문에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본죽에 상당한 로열티를 갖고 부모님까지 모시고 자주 찾았던 고객이었으나, 지금은 등을 돌려 다시는 발길을 두지 않게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 프렌차이즈 가맹점에서 먹는 죽맛이 예전에 대학로에서 먹었던 그 맛에 많이 못미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느낌도 들었다. 내 머리 속에서 본죽은 이미 건강에 좋은 따뜻한 슬로우 푸드의 이미지를 모두 잃었고, 대신 원가대비 이윤창출을 지향하며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인스턴트 식품같은 이미지가 생겼다.
앞으로 본죽이 예전의 혜화동 1호점의 따뜻하고 풍성하고 담백했던 바로 그 맛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키워드) 신뢰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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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0 update>
위 포스팅은 작년 2월28일에 작성된 것이다.
업데이트를 남기는 지금 이 시각은 11월10일이니, 이 글 <본죽을 통해서 신뢰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다.>의 포스팅 시점에서 1년 8개월하고도 10일이 경과한 후의 시점이다.
나는 위 포스팅을 작성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죽에 다시가지 않았다. 나도 내가 느꼈던 배신감이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는데, 간판도 쳐다보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지만, 위 글을 쓸때만 하더라도 나 역시 왠만하면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엔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부모님이 정 죽이 드시고 싶다고 하시면, 그냥 내가 쒀드릴 생각이다.
- 트러스트(Trust)의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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