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딕 컴퓨팅... 


2003년 미국의 경영잡지인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를 읽다가, 우연히 노매딕 컴퓨팅(Nomadic Computing)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다. 한국 매스컴에서의 인용 빈도가 잦아서 한국에서도 나름 유명 인사인 MIT 미디어랩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인터뷰 기사였다. 


처음엔 그 의미가 꽤 낯설고 쉽게 와닿지 않았다. 조금 알아보니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이 어떠한 기술의 방식을 설명하는 용어라기 보다는 인간의 특정 행동을 표현/지칭하는 IT 용어였다.


Nomadic을 키워드로 MS 엔카르타 사전을 검색해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결과가 마이그레이션(Migration, 철에 따라 이주하는 것)에 관련된 어휘들이었다. 마이그레이션은 크게 animal migration(동물의 마이그레이션)과 human migration(인간의 마이그레이션)이 있다. 동물에게 있어서 마이그레이션은 음식과 물 등을 찾아 이주하는 것과 주로 관련이 있다. 순록집단이 한 장소에서 목초를 뜯어먹다가 계절이 바뀌면서 생존을 위해 다른 목초지를 찾아 집단으로 떠나는 것과 같은 행동이 동물의 마이그레이션의 한 예가 되겠다.


  

[케냐에서 남아프리카 북부지역으로 이동중인 누 영양(wildebeest)의 마이그레이션 모습]


human migration 이라는 용어의 세부 설명에서 노매드(Nomads)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Nomads, people who have no fixed home and move according to the seasons from place to place in search of food, water, and grazing land.

노매드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음식, 물, 목초지를 찾아 한 장소에서 머물다가 계절의 변동에 따라 다른 장소로 이주하는 사람들

한영사전에서는 Nomad를 유목민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 쯤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말이 꽤 유행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각주:1] 


[ nomadic family의 임시 거주지 텐트인 유르트(Yurt) ]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님이 2003년 비즈니스 위크지에 언급한 <노매딕 컴퓨팅>이란 와이파이(Wi-Fi) 통신을 지칭하는 것[각주:2]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차세대 무선기술 표준을 놓고 여러 무선기술이 백가쟁명식으로 발표/경쟁하고 세력의 확정을 도모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중 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와이맥스 포럼(WiMAX Foram)에 따르면, 노매딕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Nomadic means the client device is transportable to secondary fixed locations with no connection while in transit.

노매딕은 고객의 (통신) 기기가 또 다른 연결을 제공할 수 있는 제2의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이동중에는 통신망과 단절된 상태이며, 제2의 장소에 도달했을때 다시 통신망과 연결된다. 



셀룰러(Cellular) 통신이 로밍(roaming)이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이동중에도 끊김없는 통신을 제공하는 것과 대비대는 개념으로서 나온 것이 nomadic 이라고 할 수 있으며, Nomadic computing 이란 컴퓨팅 파워를 갖춘 기기(당시 개념으로는 주로 컴퓨터)가 와이파이 망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1) 유목민들(Nomads)이 한 곳에서 기르는 가축 무리들이 목초를 소비하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그곳에 유르트 등과 같은 일종의 대형텐트를 설치하고 다시 한 동안 정착하면서 근방의 목초 등을 소모한다.

   - 머무는 기간(떠나기 전까지 정착한 기간)동안은 삶의 집적도가 매우 높다.

 

2) 노트북과 같은 기기가 핫스팟(hot spot)이라고 하는 와이파이 중계기가 설치된 곳(학교 강의실, 도서관, 카페 등)으로 옮겨 노트북에 인터넷 연결을 제공받는다. 핫스팟 지역을 떠나면 이동중에는 인터넷 연결을 제공받지 못한다. 또 다른 곳이 와이파이 중계기가 설치된 핫스팟이라면 그 장소에서 다시 인터넷 연결을 제공받을 수 있다. 

   - 와이파이 인터넷에 연결된 동안은 그 컴퓨팅 작업의 집적도가 매우 높다.

위의 1)과 같은 상황을 차용하여 2)와 같이 와이파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받는 행동을 노매딕(Nomadic)이라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2003년만 하더라도 와이파이(Wi-Fi, 802.11)와 셀룰러(Cellular) 3G 통신이 무선통신 시장에서 상호 경쟁관계인 일종의 대체재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제법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셀룰러가 결국 와이파이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아래는 신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벤처산업을 많이 다루었던 비즈니스2.0 이라는 잡지의 2003년 7월호의 표지제목이다. <와이파이는 이제 그만 잊어라!> 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내세우고 있다. (캐즘현상과 관련하여 교수님이 강의 중에 언급하셨는데, 상세한 내용이 궁금해서 한 부를 직접 사서 읽어봤다.)


                   [BUSINESS 2.0 2003년 7월호]


이때 발행된 business 2.0 July판을 아직 하드카피로 가지고 있는데, 주로 스마트폰의 미래 예측에 관한 내용이 많고, 그 통신 방식으로 와이파이보다는 셀룰러 3G 통신을 대세로 보고 있었다. 


성장과 혁신(원제: The Innovator's Solution)이란 책에서 크리스텐슨 교수님은 혁신기술을 바라볼 때는 기술(제품)과 고객들의 특성(attribute)을 살피는 것보다는 고객들이 그 기술(제품)을 어떠한 환경(circumstance)에서 어떠한 행동을 통해 소비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객들이 해당 기술(제품)을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는 방식, 즉 고객들이 행동에 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각주:3] 


네그로폰테 교수님이 2003년 당시 비즈니스 위크에서 <노매딕 컴퓨팅(human behavior에 근거해 나온 용어)>을 언급한 것도 위의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는 「... 중략... (고객의) 행동을 중심으로 봤을때, 셀룰러 3G가 모바일이라면  와이파이는 노매딕이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 중략... 논의의 초점은 오히려 셀룰러3G와 와이파이간의 대역폭 차이(bandwidth)에 옮겨지는 것이 타당하다.... 후략」와 같은 요지의 말을 하였다.[각주:4] 


네그로폰테 교수님은 셀룰러 3G 통신과 와이파이를 직접적 경쟁 관계인 대체재라기 보다는 상호 보완재적 관계로 본 것으로, 그는 이미 2003년에 오늘날의 스마트폰의 통신 환경을 정확히 예측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리하면, 

노매딕(Nomadic)은 대용량의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이동중 특정 장소에 잠시 정착하는 동안 접근 가능한)가 가지는 속성으로, 집적도가 높은 정보의 소비와 생산에 유리하다. Nomad라는 어휘에는 <이동과 정착>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이동성에서 제약이 있지만 정착시 상대적으로 큰 대역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와이파이(Wi-Fi)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용자들은 와이파이망을 찾아 이동하고, 와이파이 중계기가 설치된 곳(카페 등)에 한동안 정착한다.)


모바일(Mobile)은 이동 중에도 음성과 문자 등을 포함한 집적도(집적도가 높을수록 정보의 생산과 소비에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함)가 다소 낮은 정보의 소비와 생산을 충족한다. 와이파이에 비해 대역폭이 좁은 3G라 할지라도 이러한 성질의 정보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3G가 처음 출현하면서, 3G와 와이파이는 경쟁 끝에 3G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경쟁적 대체제 관계로 보는 시각)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고객의 행동 특성에 기반한 노매딕과 모바일 측면에서 바라보면, 3G와 와이파이는 서로 간의 단점을 잘 보완해줄 수 있는 상호보완재였고, 네그로폰테 교수님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셨던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시점(2013년 초)에서 바라볼때, 네그로폰테 교수님의 예측은 정확했다.


  1. 유목민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그냥 노마드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발음상으로는 노매드가 옳은 발음이다.) [본문으로]
  2. 원문에서는 The value of fixed wireless -- call it nomadic computing 이라 표현하고 있음 [본문으로]
  3. 성장과 혁신 3장, 시장:'니즈'가 아니라 '행동'에 주목하라. 참고 [본문으로]
  4. http://www.businessweek.com/stories/2003-04-27/online-extra-wi-fi-is-like-the-internet-itself 참고 [본문으로]
Posted by 200L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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