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텐슨 교수님의 성장과 혁신(Innovator's Solution)이라는 책을 보면, <경험의 학교Schools of experience 이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조직 내 경영자(또는 관리자)가 과거 맡았던 업무를 하면서 겪었던 도전이나 문제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 일을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말은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주의해서 해석해보면, 경험으로 부터 파생되는 함정(pitfall)을 경고하는 말이다. 과거 존속성 중심의 사업에 필요한 planning 중심의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 위험과 불확실성, 새로떠오르는 emerging 기술 중심의 혁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네트워크 중심의 신시장 개척 등의 업무를 맡을 경우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planning 중심의 가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planning 중심의 지배적인 가치(Dominant Logic)에 사로잡히고 만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가장 신랄하게 지적한 학자가 헨리 민츠버그, 그의 저서는 Rise and Fall of Strategic Planning) 예를 들어, 경쟁이 없이 거의 독점에 가까운 상품 또는 서비스를 전국민을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던 OO기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기업은 걱정이 없다. 매년 안정적인 매출이 확보되고, 별다른 경쟁상대도... 산업의 침체기미도 당분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품 or 서비스를 어떻게 차질없이 공급하느냐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이질적인 여러 가치사슬요소를 잘 통합해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치밀한 계획, 예산, 한치의 오차 없는 실행 능력이다.

 매년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계획>이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유능한 관리자의 최고 덕목이자, 이러한 관리자가 OO회사에서는 능력있는 인재 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현재 OO기업이 처해있는 상황을 '안정과 통합의 시대'라고 명명해보자.

 

 그런데 시간이 흘러흘러 환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경쟁자가 등장하고, 가격경쟁이 치열해졌다. 고객에게 어떻게 경쟁자보다 더 빠르게 상품을 개발하여, 상품과 서비스를 먼저 전달하느냐가 중요해진 스피드의 시대가 도래했다. 원가절감과 스피드 향상을 위해, 기존의 통합된 가치사슬을 해체하여, 필요없는 것은 아웃소싱(outsourcing) 하고, 기존의 통합기술은 표준화 하여, 빠른 스피드에 부합되는 조직 을 구축해야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었다. 수직적 가치사슬이 해체되고, 수평적 전문화의 시대가 온 것이다. 환경의 변화가 점차 가속화되면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OO기업이 새롭게 맞이하게 된 이러한 상황을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명명해보자.

 

  안정과 통합의 시대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한 계획이 중요

  전략이란 사전에 의도된 치밀한 계획중심의
    전략을 의미

  Inflexibility 가 핵심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한 상태로 

    발견중심의 시행착오가 중요

   Flexibility 가 핵심어 


계획이란 사전경험을 전재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어떠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데이타를 요구한다. 이러한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다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중히 실행하는 것이다.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고 발생가능한 오류를 사전에 최소화 하는 것이 계획(planning)의 최고의 덕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planning 중심의 사고관 때문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이 아닐 경우에, 통합의 시대에서 planning 중심의 사고로서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역량있는 간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성장한 중간 또는 최고관리자로 말미암아 문제가 발생한다.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하면 어떻게 될까? 시장점유율 정보를 정확하게 판정할 수 없다. 확보하려는 비슷한 유형의 기존 고객들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면담이나 설문조사를 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 빨리 도전적으로 발견중심의 시행착오중심의 사업을 전개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계획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관리자는 '치밀한 사전계획'을 요구한다. 사업전개의 합리화를 위해 통계정보를 원한다. 이런 통계적 정보, 데이터가 있어야만 자기 위안이 되며, 이러한 데이터가 갖춰진 이후라야 비로소 안심을 하며 명분을 갖추고 사업을 전개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은 변화의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하지 않고, planning(플래닝)에 물들여져 있는 ... 자신의 불변의 종교와 같은 계획중심의 가치관에 입각해서, 기존의 안정과 통합의 시대에서 통용되어져왔던 비즈니스모델에 신규사업을 억지로 끼워넣는데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신사업에는 신사업에 적절한 사람을... 기존사업에는 기존 사업에 적절한 사람을... 사용하라는 조언이 이런 저런 여러 경영학 서적에서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도 과연 그러하다.

 

 planning이란 정말 무서운 것 같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모든 것을 위험요소 기회요소, 현재의 강점, 약점을 한 방향으로 정렬(얼라인먼트, alignment)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의 통합중심의 비즈니스모델에 억지로 꿰어맞춰진채 실행을 앞두어, 일을 같이 하는 조직원들은 실패를 훤히 예감하는 경우...

 아! 정말... 이런 것이구나 ... 관리자도 그것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그렇게 행동한다. 안정과 통합의 시대에서 발휘해왔던 자신의 능력들과 과거의 성공경험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안정과 통합의 시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아왔던... 또한 그러한 사람들 밑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한다.

 

 전갈과 개구리라는 우화가 있다.

 강을 건너고 싶은 전갈이 있었다. 하지만 헤엄칠 줄을 몰라 개구리를 찾아가 부탁을 했다.

개구리는 전갈이 자신의 등을 찌를지 몰라 거절했다. 그러자 전갈은 강을 건너는 중에 너를 찌르면 둘다 죽는데 그럴리가 있느냐고 말했다. 개구리는 그 말을 믿고 강을 건너주기로 하고전갈을 등에 태웠다. 그러나 강물이 거칠어지자 겁이 난 전갈은 자기도 모르게 개구리를 찔러버렸다. 

 개구리가 화가나서 물었다. 죽을 걸 알면서 왜 독침으로 자기를 찔렀냐고...

개구리와 같이 강물에 빠져 죽어가면서 전갈은 자조적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이게 내 천성이야...」  

 


 [이미지 출처: 한겨레신문, 2006년]


 그래서 회사에서 신사업 을 할 때면, 사람을 신중하게 선발해야한다. 과거의 성공에 눈부신 관리자를 능력이 인정된... 검증된 사람이라고 해서, 신사업을 덜컥 맞겨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과거의 성공에 빛나는 관리자는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누군 태어나서부터 신사업했나? 나라고 못할 것 있나?」 그렇지만, 못한다. 해서는 아니된다. 자신이 도전적이고 불확실한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그 일을 맡아서는 안된다. 회사에 피해를 끼치게 되기때문이다. 또한, 신규 사업을 하는데 같이 끼어서도 안된다. 불확실성에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러면 어떻게 되죠? 저러면 어떻게 되죠? 여기에 대한 증거가 있나요? 고객조사는 했나요? 무슨 근거로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죠?

 

 스티븐 코비 박사에 따르면 안정과 통합의 시대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호수위에서 벌어지는 조정경기형태의 조직에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 콕스라고 불리는 이가, 노 젖는 이들을 감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죠. 노 젖는 이들은 일사분란하게 콕스의 지시에 따라 노를 저어가는 것이고, 콕스의 지시감독(계획)과 그에 맞춘 일사분란함(치밀한 실행)이 성공의 요소라고 한다.

 하지만,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는 거칠고 물살이 거센 격류 속에서 벌어지는 레프팅 경기를 하는 조직에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 각자가 누구의 지시없이 특별한 사전계획없이 그때그때 변화의 상황에 임기응변을 발휘하며 변화에 대처해나가며, 물살의 흐름과 세기 등을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해하게 되고, 이렇게 쌓여진 지식을 팀원들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안정과 통합의 시대...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는 요구되는 사람들이 너무나 다른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너무너무나 강조하신 경영학자가 있었으니,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그 이름도 유명하신 헨리 민쯔버그 님이시다.

 

 헨리 민쯔버그 님에 의하면, 「계획중심의 전략적 사고관(플래닝, planning)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유연한 전략계획(flexible planning)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헛소리다. plan이라는 말 자체에 숨어있는 최고의 의도는 inflexible(유연하지 않음, 융통성 없음, 변화 불허, 한치의 오차없음 등등)이다.  ... 중략...

 혁신은 결코 경직된 것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원문:Innovation has never been institutionalized...) 라고 말씀하신다. <From Planning and Flexibility (Henry Minzberg, 1994)>

 

크리스텐슨 교수도 그의 저서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데, 「안정과 통합의 사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존속성 혁신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와해성 혁신이론에 적합한 새로운 혁신적 사업모델도 기존의 존속성 혁신의 틀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른바 비즈니스 모델(BM)의 끼워넣기를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와해성 혁신적인 사업에 실패하는 경향이 많다. 와해성 혁신이론에 걸맞는 사람은 그에 맞는 가치를 지닌 사람이다. 」라는 요지의 글들을 그의 저서를 통해 일관되게 저술하고 있다.

 

 나도 우화를 하나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마을에 철수와 영희가 살고 있었다. 3년에 한번씩 산넘어 마을에는 오즈의 마법사가 살고있는 꿈과 희망의 나라로 인도해줄 멋진 배가 온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영희는 내일 빨리 산을 넘어 마을로 가려고 한다. 옆에 있던 철수가 이야기 했다.

 「내일 산을 넘어가는데 비가오면 어떻게 하지? 비가 오면 우산을 사야할텐데... 우산은 어디서 사야하지?

 우산을 사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을 은행에서 찾아야 할까? 근처 ATM에서 뽑을까? 친구에게 빌릴까? 외상으로 살까? 우산은 수퍼마켓에서 사야해? 편의점에서 사야해? 우산말고 우비를 입고 가면 안되?

 그런데, 비가 오면 길이 미끄러울 꺼야... 그에 대한 대책은 세워놓았어? 신발은 고무신이 좋을까? 그냥 짚신이 좋을까? 고무신과 짚신의 장단점과 기대효과에 대해 상세한 분석을 보고서에 첨가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 있지만, 비가 안오면 다행이지만, 비가 올 때를 생각해서 대비하고 있다가

정말로 비가 오면 지금 세우는 계획이 없었다면 후회할뻔했다 라는 생각이 들꺼야. 만약 다행스럽게 날씨가 맑다면 어떤 길로 가는게 가장 빠를까? 큰 길을 따라갈까? 돌아갈까? 지름길은 없을까? 지름길을 찾아볼 필요가 있어야 할 것 같다싶어서 하는 말이야...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우선은 서식에 맞게 보고서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겠어. 산을 넘어가는 목적, 기대효과, 일기예보, 과거 이맘때의 기상 추이를 그림으로 하나 넣어보고 말이야...

 그리고, 내일 산을 넘으로면, 6시에 일어나서 6시 30분에 밥을 먹고, 7시에 짐을 꾸리고, 8시엔 출발하고, 9시 30분에는 산 중턱에 도착해야하지 않을까? 산을 넘을때 까지 시간별로 일정계획도 있어야 할 것 같아.

 산을 넘을때 산짐승을 만났을 경우에 대비해서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우선 보고서의 제목은 <OO호 탑승을 위한 산을 넘기 위한 방안>이 좋겠어.

 자... 그러면 영희야 너는 환경예측 부터, 우산, 신발 관련 내용을 맡아서 써봐... 돈 찾기와 산을 넘는 목적, 기대효과, 시간계획은 내가 짜볼께... 그런다음 합쳐서 다시한번 검토해보고 수정해보자...」

 

 철수와 영희는 계획만 세우다 산을 넘어보지도 못하고, 결국은 배를 놓치고야 말았다.

 


Posted by 200L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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