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 아이패드의 미래 - (1) 스티브잡스가 이름을 아이패드라고 지은 이유 >에서 

와해성 혁신이론을 통해 아이패드는 아마도 아래와 같은 과정으로 시장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설명했다.


   ① 아이패드가 처음에는 노트북 또는 데스크탑PC와는 다른 가치를 제공하며 신시장을 개척

   ② 어느순간 아이패드가 신시장 개척 가치에 더해 노트북 또는 데스크탑PC의 가치까지 충족시키는 수준까지 발전

   ③ 아이패드에서 노트북 또는 데스크탑 PC유저들이 이용하기에 훨씬 부담이 적고 더욱 편리한 환경이 조성

   ④ 노트북 또는 데스크탑PC의 로우엔드 유저들과 하이엔드 유저들이 아이패드의 가치네트워크로 차례로 이탈


지난번 글에서도 살펴보았던 것이지만,

어떠한 혁신적인 제품의 성공은 시장(market)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서의 성공을 논할때 핵심은 그 제품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어떤 특정한 가치(value)이다.


이전 글에서 스티브잡스는  신제품 기획단계에서부터 아이패드가 처음부터 고객들의 인식 속에서 PC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제공하는 기기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랬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아이패드가 그 가치를 어떻게 포지셔닝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명망있는 두 분의 인사들께서 하신 혁신제품의 가치(Value)와 관련된 말씀을 인용하려고 한다. 


1. 우선 설명할 것은 MIT 미디어랩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님[각주:1]이 언급하신 노매딕 컴퓨팅(Nomadic Computing)과 모바일(mobile)[각주:2]이란 가치이다.


■ <노매딕(Nomadic) 속성>과 <모바일(Mobile) 속성>


◆ 노매딕(Nomadic)
 대용량의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가 가지는 속성으로, 집적도가 높은 정보의 소비와 생산
◆ 모바일(Mobile)

 이동 중에도 주의를 그렇게 깊이 기울이지 않아도 (즉, 다소 산만한 상태에서도 아무 생각없이) 정보의 소비가 가능, 집적도가 다소 낮은 정보의 소비와 생산


  네그로폰테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아이패드(iPad)의 경우, 노트북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바일(moblie) 속성에 보다 가까운 작업에 최적화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패드를 써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아이패드는 소파에 누워서 웹서핑을 한다거나, TV를 보면서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본다거나 실시간 댓글을 확인하는 것 등에 더 적합한 정보기기이다.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 한가지

OO에 사는 홍길동은 토요일 오후 거실 소파에 한가롭게 누워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시계는 벌써 저녁 6시를 가르키고 있고, TV에서는 무한또젼이라는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가 방송중이다. 박명수가 정준하의 「쩌리짱」이라는 별명이 자신이 지어준 것이라고 으쓱해하는 장면을 본 홍길동은 소파 옆 협탁 위에 놓여져있던 아이패드를 집어든다. 사파리(Safari)라는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네이버에 접속해 「쩌리짱」을 검색해보다가 문득 눈에 띄는 다른 가십성 기사 링크를 클릭해서 읽어보고 있다. 귀로는 여전히 무한또젼을 들으면서 말이다. 



 위의 예와 같이, TV채널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맞춰놓고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패드를 쳐다보는 것, 

때로는 거실에서, 때로는 침실에서, 때로는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이동 중에 산만한 상태에서 가볍게 사용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이패드(iPad)이다. 정보처리(information processing)보다는 오히려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측면이 강하다. 노트북에 비해 무게중심을 모바일 속성에 두는 쪽으로 포지셔닝(positioning)된 기기인 것이다.  


 반면에, 노트북의 경우 아이패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매딕 속성에 가까운 작업에 최적화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각주:3]

책상이라는 고정된 장소에 올려져있는 노트북을 책상 의자에 앉아서 보다 심도있는 정보를 소비하고 처리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라던지, 워드 또는 파워포인트 같은 자료를 만들기도 한다. 제대로된 컴퓨팅을 위한 기기인 것이다. 

지하철, 버스안에서 노트북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간단한 글을 읽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 노트북이 노매딕 속성을 위한 기기라는 것을 반증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아이패드에 태블릿PC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렇게 훌륭한 작명이 못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저들은 PC라는 단어에서「프로세싱 또는 컴퓨팅 파워」같은 가치를 머리속에서 무의식중에 떠올리고 이러한 가치의 충족을 기대한다. 하지만, 현재 수준의 태블릿PC들은 이러한 가치를 결코 노트북 수준으로 만족시켜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태블릿PC는 아이패드와 동일선상에 있는 아이패드의 경쟁제품이고, 추구하는 가치는 모바일 속성이다. 그런데, 실제 이름에는 노매딕 속성을 지향하는 듯한 PC라는 단어가 붙어있으므로, 이름에서 연상되는 가치와 실제로 추구하는 가치간의 불일치[각주:4]가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태블릿PC는 현 시점에서 그렇게 좋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지난 글에서 와해성 혁신 이론을 적용하면서 소개했던 위의 가치네트워크 그림을 통해 살펴보면, 

노트북은 노매딕(nomadic) 속성을 기준으로 그 시장에서 여러 참여자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으며,

아이패드는 모바일(mobile) 속성을 기준으로 현재 이 속성을 소비하지 않던 비소비계층을 새롭게 공략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아이패드는 노트북과 별개의 가치를 제공하며,  현재 노트북이 제공하는 가치와 중복이나 충돌이 거의 없어 당분간은 노트북과 시장에서 정면대결을 펼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2. 다음으로 설명할 것은 이어령 교수님께서 2010년 4월 <누워서 노는 컴퓨터 시대가 왔다>[각주:5]라는 칼럼에서 밝히신 <거치성(据置性) 가치>와 <와유성(臥遊性) 가치>에 관한 것이다. 


■ <거치성(据置性) 가치>와 <와유성(臥遊性) 가치>


◆ 거치성(据置性) 
 인간의 기본적인 동작은 '앉다', '서다', '눕다'의 세 가지 다른 자세에서 나오는데, 이 중 '앉다'에서 나온 것이 의자에 앉아서 작업하는 데스크톱PC의 거치성(据置性)임, 집적도가 높은 정보의 소비와 처리

  

◆ 와유성(臥遊性) 

 인간의 기본적 동작 중 누워있는 자세에서 나온 산물이 와유성(臥遊性) 임, 와유성은 소나무 그늘에 비스듬히 누워서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동양의 신선 문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특성으로, 키보드 없는 컴퓨터의 특·장점이 백 가지, 천 가지라 해도 첫 손에 꼽을 것은 역시 ‘누워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와유성(臥遊性) 이라고 할 수 있음[각주:6]


위에서 예로서 들었던 <무한또젼> 사례처럼, 아이패드 사용자들 중에는 실제로 거실 소파에서 귀로는 티비를 들으면서 소파 팔걸이에 아이패드를 놓거나 또는 두손으로 잡고 인터넷 뉴스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잡지를 보거나, 게임 등을 하다가 티비에서 무엇인가 재미있거나 인상적인 것이 귀에 포착될 경우, 시선을 다시 티비로 돌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아이패드는 실로 이어령 교수님이 말씀하신 <와유성(臥遊性) 가치>를 제대로 실현시켜주고 있는 제품[각주:7]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령 교수님이 언급하신 거치성(据置性)과 와유성(臥遊性)을 

네그로폰테 교수님이 언급하신 노매딕 및 모바일 속성과 매칭시키면 아래와 같다.


컴퓨터를 거치(据置)한 상태에서 집적도가 높은 정보의 소비와 처리 <-> 노매딕(nomadic)

아이패드를 와유(臥遊)한 상태에서 집적도가 낮은 정보의 소비와 처리 <-> 모바일(mobile)


지금까지 설명한 모바일 속성과 와유성은 노매딕과 거치성과는 분명히 차별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아이패드는 이러한 차별적 가치를 바탕으로 동일 가치네트워크에서 직접적 경쟁을 피하고 별도의 가치네트워크에서 경쟁력을 갖고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이패드의 시장상황은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


■ 한동안 노트북 유저들의 아이패드로의 이탈은 없을 것임

TV광고에서는 마치 아이패드에서 모든 작업이 다 되는 것 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노트북 수준의 워드, PPT, 스프레드쉬트, 데이터베이스 사용이 어려우며, 

텍스트 처리능력도 노트북의 워드프로세스 기능에 비하면 그 프로세싱 능력과 성능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이러한 것들이 아이패드에서 충족되기 전까지는 노트북 유저들의 이탈이 없을 것이다.


■ 또 하나의 변수: 클라우드 컴퓨팅의 보급과 활성화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더, 주의깊게 봐야할 것이 있는데,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이라는 것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모바일 컴퓨팅 기기의 CPU, RAM, HDD(또는 SSD) 등 여러 하부 모듈 개선없이도 

노트북 수준의 노매딕 컴퓨팅 능력을 부여해서,

노트북 → 아이패드/태블릿PC로 유저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는 파괴력있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모바일 컴퓨팅 기기가 더이상의 가격상승 요인 없이도 노트북 수준의 노매딕 속성을 지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의 도표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구글[각주:8]에 접속해서 로그인만 하면, 워드프로세스, 스프레드 쉬트, 프리젠테이션, DB처리와 같은 작업을 모두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왠만한 이미지 편집같은 것도 구글에서 다 지원한다고 생각해보라. 자신의 자료들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지 않고 구글이 제공하는 웹 공간에 저장한다고 생각해보라. 

 아이패드에서도 사무용 노트북 수준의 노매딕 컴퓨팅이 제공되는 것이고, 이로 인해 로우엔드 노트북 유저의 이탈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더해서, 구글이 각종 통계처리 수준의 고수준의 컴퓨팅까지 지원한다면, 하이엔드 노트북 유저의 이탈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컴퓨팅 파워 측면에서 현재 아이패드에서 이용가능한 클라우드 컴퓨팅은 다소 엉성해 보인다. 이는 구글 드라이브 등의 웹서비스를 통해서 제공되는 스프레드쉬트 등을 직접 사용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시점에서 아이패드용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활성화된 것은 단순히 자료를 네트워크상의 스토리지(storage)에 저장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고, 이는 위 도표의 컴퓨팅 파워라는 성능기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1. MIT 미디어 테크놀로지 교수, 미디어랩의 공동창설자, 와이어드(Wired)지 창간, 95년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이라는 책을 퉁해 디지털이 현대사회에서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예측 [본문으로]
  2. 비즈니스위크 2003년 4월호 http://www.businessweek.com/magazine/content/03_17/b3830613.htm 참고 [본문으로]
  3. 노매딕과 모바일은 다소 상대적 개념으로서 여기서는 노트북과 아이패드가 어느쪽 기기가 상대적으로 노매딕인가 모바일인가를 생각해본 것임 [본문으로]
  4. 제품의 속성과 고객의 마인드상에서 그 제품의 이름이 갖는 이미지를 일치시켜주는 것을 얼라인먼트(alignment, 정렬)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5.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799033&ctg=2010 [본문으로]
  6. 이어령 교수님에 따르면, 인간의 기본적인 자세 중에서 '서다'에서 나온 것이 걸어다니며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의 휴대성(携帶性)이다. [본문으로]
  7. 와유성 가치제공에 있어서 걸림돌이 있다면, 아이패드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장시간 사용에는 생각보다 부담스럽다는 것인데, 아이패드 미니 버전에서 이러한 점들이 경량화를 통해 개선되었다. [본문으로]
  8. 구글에서 출시를 준비중인 구글 크롬OS(Chrome OS)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게 될 경우 클라우드 컴퓨팅을 더욱 가속화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200L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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