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는 왜 그의 신제품에 속칭 '판때기' 라는 의미의 패드(Pad)[각주:1]라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을 붙였을까?

나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그가 살아생전 아이패드를 아이PC, 아이태블릿, 아이태블릿PC, 아이패드PC, 아이패드태블릿PC과 같이 부르지 않고, 그 이름에 PC 또는 PC가 연상되는 태블릿이라는 단어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음에 주목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단순히 작명단계가 아닌 제품의 컨셉기획 초기부터 PC와는 의도적인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추론했다. 왜냐하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아이패드가 제공하는 가치가 기존의 PC가 제공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제품의 이름은 그 제품의 가치를 대변한다.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사용자(user)의 가치 측면에서 아이패드를 바라볼 수 있는 경영학 이론이 있는데, 이름하여 와해성 혁신이론(disruptive innovation)[각주:2]이라는 것이다. 경영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우는 크리스텐슨 교수님의 명저 <성장과 혁신>이라는 책에 등장한다. 혁신제품을 그 제품이 고객(customer)에게 제공하는 가치(value) 중심으로 바라볼 때 매우 유용한 분석도구이다. 


스티브잡스가 이미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다고 알려진 신제품의 이름에 

태블릿PC 등과 같은 어휘를 멀리하고 <아이(i)+패드라는 조합>을 선택한 이유의 추론에

와해성 혁신이론이라는 프레임워크(framework)[각주:3]를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스티브잡스가 그의 신제품에 아이패드라는 이름 대신 아이태블릿PC라는 이름을 부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당시 시장(market)에서 아이태블릿PC와 가장 가깝고 닮은 제품은?

이동성 측면에서 볼때, 아마도 이러한 제품은 노트북(notebook) 일 것이고, 노트북은 아이태블릿PC의 가장 직접적인 경쟁자라고 할 수 있다.


■ 노트북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value)를 중심으로 시장에서 자리매김한 과정

 

기억을 더듬어서 노트북(notebook)이 시장에 처음 등장했을때를 생각해보자. 

경제학의 기초에 속하는 것이지만, 시장에는 대체재와 보완재라는 것이 있다. 

처음 시장에 등장한 노트북은 당시 시점에서 대세라고 할 수 있는 데스크탑 PC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였다. 

그 의미는 유저가 데스크탑 PC와 노트북에게서 기대하는 성능 기준이 각각 달랐다는 말이다.




위의 그림과 같이, 데스크탑 PC에서 요구되는 성능이 높은 수준의 컴퓨팅 프로세싱을 필요로 한다면, 

노트북에서는 컴퓨팅 파워보다는 이동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데스크탑 PC와 노트북이 시장에서 승부하는 가치(Value)는 서로 달랐던 것이다. 

 노트북은 이동성이 주된 가치(Value)인 가치네트워크[각주:4] 상에 속해 있어, 

이러한 이동성에 초점을 맞춰 우선적으로 성능개선이 일어나게 된다. (예: 보다 얇고, 가볍고 등)

 마찬가지로, 데스크탑 PC는 컴퓨팅 파워가 주된 가치인 가치네트워크 상에 속해 있어

이에 초점을 맞춰 우선적으로 성능 개선이 일어나게 된다. (예: CPU가 빠르고, 저장공간이 크고, 램 용량이 크고 등) 



■ 새로운 가치로의 사용자 이동


 그런데, 노트북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데스크탑 PC의 유저들이 중요시 여겼던 컴퓨팅 파워라는 가치가 노트북에서도 충분히 구현되는 시점이 온다.

노트북에서도 이제는 논문,전자출판 수준의 워드프로세싱과 편집 같은 작업이 원활하게 처리된다.

프리젠테이션 작성시 많은 페이지를 작성해도 노트북이 버벅대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단순 사무용 같은 로우엔드 니즈를 가지고 있는 유저들에게

노트북은 데스크탑PC의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로 자리잡게 된다. 

 결국, 데스크탑 PC의 로우엔드 유저들 중에 노트북으로 이탈하는 유저들이 생기고, 

노트북의 성능에서 컴퓨팅 파워라는 가치가 보강될수록 더 많은 유저들이 이탈하게 된다.   





 시간이 더 경과함에 따라, 

노트북에서도 대용량 데이터를 로드(load)하고 처리(processing)해야하는 고급 통계 프로그램이 무리없이 운용되고,

별도의 고급 그래픽카드를 갖춘 데스크탑PC에서나 가능했던 각종 고화질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점이 도래하면,

하이엔드 니즈를 가지고 있는 유저들에게 있어서도 노트북은 이제 데스크탑 PC의 대체재가 된다. 

 종합적으로 보면, 데스크탑PC유저들 입장에서 보면, 

노트북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면서 데스크탑 PC가 제공해주지 못하는 이동성이라는 가치까지 제공하는 매력적인 것이 된다. 이때, 데스크탑 PC유저들의 이탈이 더욱 가속화된다. 

 노트북에 비해 이동성이라는 가치제공에 한계를 보이면서, 데스크탑PC의 가치네트워크는 와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정리하면 아래의 그림처럼 도식화[각주:5]될 수 있다.  





 위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노트북이 데스크탑 PC의 주된 가치였던 컴퓨팅 파워라는 가치를 보강함에 따라 

로우엔드 유저가 먼저 이탈하고, 컴퓨팅 파워면에서 향상이 가속화되면서 하이엔드 유저도 이탈하기 시작한다. 


만약 노트북이 시장에 처음 진입했을때, <컴퓨팅파워> 가치 기준으로 데스크탑PC와 직접적인 경쟁을 했다면,

노트북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와해성 혁신이론식으로 말하자면, 컴퓨팅파워(Computing Power)라는 성능기준의 동일 가치네트워크에서 경쟁을 했더라면 시장 파급력이 미미했을 것이란 의미이다. 즉, 노트북은 컴퓨팅파워와는 다른 이동성(Mobility)이라는 성능기준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 별도의 가치네트워크를 형성했기에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 위에서 노트북에 적용해 본 와해성 혁신의 원리는 아이태블릿PC[각주:6]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태블릿PC가 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시점에서 시장의 대세는 노트북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이태블릿PC의 이동성은 노트북도 이미 제공하고 있는 동일한 성질의 가치이다. 이는 아이태블릿PC의 이동성이란 가치가 노트북의 그것에 비해 별달리 차별적인 가치로 고객에게 호소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유저들은 노트북과 아이태블릿PC를 동일선상에 올려 놓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제품의 이름이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우, 그 이름은 고객의 잠재인식 속에서 해당 제품의 가치를 대변한다.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각주:7] (예: 평판 TV, LCD 모니터, LED TV 등)

유감스럽게도 이제 그들은 아이태블릿PC라는 이름에 포함된 PC라는 단어로부터 「프로세싱 또는 컴퓨팅 파워」같은 가치를 머리 속에서 무의식중에 떠올리고, 아이태블릿PC가 그들에게 이러한 가치를 충족시켜줄 것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아이태블릿PC의 잠재고객들은 이제 

직접적 경쟁자인 노트북 또는 데스크탑PC가 제공하는 컴퓨팅 파워에 근접하는 수준의 성능을 기대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태블릿PC의 컴퓨팅 파워가 노트북 또는 데스크탑PC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데 있다.


옛말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말이 있듯이,

고객들은 아이태블릿PC를 구매하는 순간 가졌던 기대가 컷던 만큼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정리하면, 아이태블릿PC를 구매한 고객들에게

아이태블릿PC의 이동성은 노트북에 비해 그리 차별적인 가치가 되지 못하고,

PC라는 이름으로부터 연상되는 <프로세싱 또는 컴퓨팅 파워> 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아이태블릿PC를 평가하여 처음 기대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만족감을 얻게 된다.  


스티브잡스는 아이패드 출시 전에 이미 이러한 상황을 냉철히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의 신제품이 처음부터 고객들의 인식 속에서  

PC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제공하는 기기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나는 스티브잡스가 신제품 이름을 아이패드라고 지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력히 추정해본다.


이제 남은 것은 위 그림에서의 오른쪽과 같은 상황이 되기 위해

아이패드가 유저에게 이동성과 같은 가치 외에 다른 어떤 차별적이면서 상이한 가치를 제공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름에서 PC라는 단어를 배제하였으니, 고객에게 실제로 제공되는 가치도 PC의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어야 한다.

마케팅 용어로 고객에게 실제 제공되는 가치설정을 포지셔닝(positioning)이라고 하는데,

스티브잡스가 아이패드를 어떻게 포지셔닝 시켰는지는 다음 글에서 한번 고찰해볼까 한다. 

 

 < To be continued... >

 


  1. 패드(pad)의 영영사전 의미 A pad is a fairly thick, flat piece of a material such as cloth or rubber. A pad is a platform or an area of flat, hard ground [본문으로]
  2. disruptive 라는 단어를 파괴적이고 번역한 국내 번역서도 있다. 매체에 따라 파괴적 혁신이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3. 특정 현상을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일련의 이론 [본문으로]
  4. 구매의 기준이 되는 가치를 구현하는 기술(제품)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군과 그 가치를 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본문으로]
  5. 이해의 편이를 위해 성능 기준을 컴퓨팅 파워 vs 이동성으로 단순화 시켰지만, 사실 가격(price)도 상당히 중요한 가치이다. 노트북의 가격이 데스크탑 PC의 가격에 수렴해가는 것도 유저들의 이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문으로]
  6. 지금은 아이패드라는 이름 대신 아이태블릿PC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고 가정하고 있는 중임을 잊지 말자. [본문으로]
  7. 이 부분에 대한 추가이해는 The 22 Immutable Laws of Marketing (Al Ries & Jack Trout, 마케팅 불변의 법칙) 을 참고 [본문으로]
Posted by 200L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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