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필기감에 대하여


한달전 쯤에 영화 <잡스>를 보고 나서 내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계식 키보드>에 대한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http://200lx.tistory.com/32  이 글의 소재가 된 체리(CHERRY) 키보드를 처음 타이핑했을 때의 그 느낌은 정말 신선했다. 글 중에서 사용한 <단언컨대 키감이 끝내준다>라는 표현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거의 10년전쯤 이에 비견될 만한 느낌을 가졌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내겐 조금은 생소했던 어감의 지브라 사라사(ZEBRA SARASA)라는 젤잉크(Gel Ink) 볼펜을 우연히 처음 사용했을 때이다. 그땐 <단언컨데 정말 끝내주는 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당시 유사한 디자인의 국산 제품에 비해서 가격이 훨씬 높은 편이었는데, 이 볼펜을 어떤 인터넷 문구숍에서 일반 문구점에 비해 거의 반값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리필심을 포함하여 상당한 수량을 구매했다. 그후 지금까지 이렇게 쟁여 놓은 <사라사> 볼펜만을 사용해왔다. 10년의 세월동안 여러 겉옷 주머니에, 가방에, 필통에, 다이어리에... 여기저기 넣어두고 다니면서 분실도 많이하고, 예비 리필심도 거의 다 소모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명필 아닌 사람은 볼펜을 가린다


나는 일명 똑딱이라고 불리우는 노크(knock) 방식의 볼펜을 선호했다. 모나미153 볼펜처럼 내부에 스프링이 있고 펜의 가장 윗 부분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면 <똑>소리가 나면서 볼펜심이 밖으로 돌출되었다가, 한번 더 눌러주면 <딱> 소리가 나면서 심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 노크(knock) 방식을 선호했던 것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캡방식 볼펜의 경우 캡(cap)을 자주 분실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사라사 볼펜은 노크방식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몇 가지 모델로 나뉘는데, 나는 펜대를 잡았을때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더 느껴지는 <하이퍼젤 HYPER JELL>이라는 모델을 주로 사용해왔다. 속기가 필요할 경우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볼펜이다.


[사진] 사라사 일반형과 하이퍼젤, 하이퍼젤의 펜대가 조금 더 굵고 무거우며, 볼펜의 끝부분(Tip or Head)이 일반형에 비해 짧다.


생각해보니 키보드와 볼펜은 모두 글을 쓰는데 꼭 필요한 도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나는 명필이 아니므로 키보드와 볼펜은 나한테 맞는 것을 가려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시생들이 선호하는 볼펜


그런데, 최근 우연히  < 1000원짜리 '마하펜' 대박…고시촌에선 "모르면 간첩" >이라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고시생들 사이에서 마하펜(Mach Pen)이라는 제품이 내가 사용하는 <사라사> 볼펜보다 인기가 더 좋다는 것이다. 호기심에 마하펜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마하펜은 수성잉크를 채용한 수성펜이었다. 한편, 마하펜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는 과정에서, 고시 수험생들 사이에서 <사라사> 볼펜보다 선호도가 더 높다는  에너겔(ENERGEL)과 제트스트림(JETSTREAM)이라는 볼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볼펜 산업계의 파워유저라고 할 수 있는 고시생들 사이에서, 내가 그렇게나 좋다고 생각해왔던 <사라사> 볼펜보다 선호도가 높은 볼펜이 있다고 하니, 나는 다시 한번 속칭 <구매뽐뿌>를 받았다. 그리하여, 온라인 문구샵을 통해 <에너겔>, <제트스트림>, <마하펜>을 각각 종류별로 여러자루 구매하게 되었다. 아울러, <사라사> 볼펜의 경우, 기존에 없던 1.0 제품이 새로 나와 있는 것 같아 <JF-1.0>이라는 1.0 굵기의 리필심도 20개를 구매했다.



심오한 볼펜의 세계


한편, 볼펜은 얼핏 생각하기에 로우테크(low tech) 범용품(commodity) 같지만, 조금 들여다보니 최첨단의 잉크가 사용되는 하이테크(high tech) 제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지우개로 문지르면 지워지는 잉크까지 나와있다고 한다. 볼펜을 제조하는 문구기업들의 역사가 깊고, 출시된 브랜드가 다양했다. 용도에 따른 제품의 종류 및 그 형태 역시 다양해보였다. 솔직히 <볼펜의 세계도 장난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볼펜과 관련된 동호회도 있고, 볼펜을 종류별로 수집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단순한 구글링 만으로도 어렵지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잉크를 기준으로한 볼펜의 분류


일단 볼펜은 어떤 종류의 잉크를 사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기본적으로는 3가지 정도로 분류되는 것 같다.

짧은 시간의 구글링을 통해 파악한 현재 나의 얕은 수준의 배경지식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1. 유성펜 (유성잉크)

80~90년대를 주름잡았던 그 이름도 유명한 모나미153 볼펜이 대표적으로 친숙한 유성펜일 것 같다. 종이에 잉크가 밀착되며 필기물에 물기가 닿아도 잘 번지지 않지만, 잉크가 가끔씩 뭉쳐서 나오는 경우가 있고, 잉크의 점도가 높아서 필기감이 약간 무겁거나 뻑뻑하다는 단점이 있다.


2.  수성펜 (수성잉크)

수성펜은 유성잉크에 비해서 선명하고 부드럽게 써진다. 마치 만년필을 쓰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종이에 글씨를 쓰고 나서 잉크가 마르는데 유성펜에 비해 시간이 더 소요된다. 잉크가 마르고 난 다음에도 필기된 내용 위에 물기가 묻을 경우 글씨가 너무 쉽게 번진다는 단점이 있다. 필기를 하고 나서 손 밑부분을 보면 손에 잉크 흔적이 마치 그을음 진 것처럼 거멓게 묻어있거나, 가끔 잉크가 줄줄 새서 휴지뭉치로 막으며 난감해하였던 경험들이 한 번씩은 있을 것 같다. 


3. 중성펜 (젤 잉크 Gel Ink)

기본적으로 수성잉크에 젤물질 등을 혼합해만든 <젤 잉크 Gel Ink>를 사용하는 볼펜이다. 흔히 중성펜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한결 가볍고 부드럽게 써지면서 잉크가 뭉치지 않으며 잉크의 건조속도도 빠른 편이다. 그리고, 내수성이 있어 일단 잉크가 건조되면 여간해서는 잘 번지지 않는다. 다만, 잉크가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정신없이 필기하다보면 역시 용지와 맞닿는 손의 밑부분에 그을음 진 것같은 잉크흔적이 묻어 있기도 한다. 또한, 맥그로힐과 같은 원서교재에서 주로 사용하는 살짝 코팅된 반질반질한 용지 위에 쓸 경우, 잉크가 마르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는 편이다.


※ 최근에 나오는 유성 및 수성펜들은 각각의 고유한 장점은 살리면서 단점은 상당부분 보완한 제품들인 것 같다. 잉크 기술의 발달이 제품에 꾸준히 반영된 결과라고 짐작된다. 최근 기업들은 연구 및 개발을 통해 <유성잉크와 수성펜> 또는 <유성잉크와 젤 잉크>의 특성이 혼합된 새로운 하이브리드 형태의 잉크들을 새롭게 선보이는 것 같다. 온라인 숍을 검색해보면, 이러한 잉크를 채용한 볼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아쉽지만 이러한 첨단 볼펜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일본의 문구기업들인 것 같다.



* 마하펜(Mach Pen)


 위에서 링크된 기사[각주:1]와 같이, 마하펜의 제조사는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라는 한국 기업이다.[각주:2] 모닝글로리라는 이름은 내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머리 속에서 노트, 지우개 등이 쉽게 연상된다. 학생시절 모닝글로리에서 나온 노트를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 국내 문구기업인 동아연필, 모나미(Monami), 바른손(Barunson) 등도 경쟁력있는 문구전문 회사인 것 같다. 이러한 회사들 역시 유성, 수성, 중성펜 각각에 해당하는 제품군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글은 링크된 신문기사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해당 제품을 실제로 구매하고 사용한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일단 이 회사들의 제품들은 언급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다음 기회에 혹시 사용경험이 생기면 별도로 살펴볼 수도 있겠다.


일단 마하펜은 내가 기존에 사용하던 볼펜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방식이다. 나는 일명 똑딱이라고 하는 노크(knock) 방식 및 중성펜 중에서도 펜촉이 원뿔형태로 생긴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마하펜은 캡(cap) 방식이면서, 니들 팁 또는 니들 포인트(needle tip or needle point)라고 하는 바늘형태의 가는 일자형 펜촉을 채용하고 있었다. 또한 마하펜은 수성펜이다.


마하펜과 같은 니들포인트 볼펜은 나에게 생소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하펜으로 글씨를 쓸때 다소 어색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정도 사용하니 이내 마하펜에 적응이 되었다.

마하펜은 개량된 잉크[각주:3]를 채용해서인지 글씨를 씀과 거의 동시에 잉크가 건조되어서 글씨를 쓴 직후 손으로 문질러보아도 글자의 번짐이 거의 없었다.[각주:4] 내가 펜을 움직일때마다, 가늘지만 진하고 또렷한 글자들이 <슥쓱>하는 왠지 기분좋은 소리와 함께 종이 위에 남았다. 무엇인가 산뜻하면서도 예리한 필기감이라고나 할까?


[사진] 마하펜1(Original), 2, 3, 각각 0.4, 0.4, 0.38이며, 1,2,3로 갈수록 펜의 디자인이 많이 바뀌었다.


이와 같은 내 느낌은 순전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나는 마하펜이 마음에 들었다. 외관적인 면에서, 일단 마하펜2는 펜대가 마하펜1,마하펜3에 비해서 가늘다. 마하펜3는 0.38의 굵기, 마하펜1은 0.4의 굵기이다. 개인적으로는 마하펜1,2,3 중에 마하펜1이 오히려 가장 괜찮게 느껴졌다. 마하펜1 볼펜을 유심히 보니, 펜대 밑면에 <마하펜 Original>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추측컨데, 마하펜2, 3 가 발매된 후에도, 여전히 마하펜1에 대한 수요가 있어 original 이라는 단어를 붙여 계속 생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사라사(SARASA)


내가 지난 10여 년간 주로 사용해 온 사라사 볼펜에 대해 좀 더 살펴보니, 이 볼펜의 제조사는 1897년 창업된 제브라(ZEBRA)라는 일본의 문구 기업이다[각주:5].  볼펜 제품의 경우, 중성펜, 수성펜, 유성펜 라인업을 갖춰놓고 각 카테고리 별로 대표 제품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사라사(SARASA)는 이 회사가 판매하는 중성펜(젤잉크펜) 제품의 브랜드 이름이다.


 유성펜의 경우 짐니스틱(JIMNIESTICK), 수성펜의 경우 제브롤러(ZEB-Roller)라는 이름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 같다.

※ 최근에는 에멀젼 잉크(Emulsion Ink)라는 이름의 신제품 잉크를 출시한 것 같다. 회사의 설명에 따르면, 유성과 수성 잉크의 특성을 모두 수용한 일종의 하이브리드 잉크라고 한다. 스라리(Surari)라는 제품이 이 잉크를 채택했다.[각주:6]


<사라사 하이퍼 젤>볼펜의 심을 이번에 새로 구매한 1.0굵기의 <JF-1.0> 리필심으로 바꿔 넣고 필기를 해보았다. 필기감이 한층 더 부드러웠다. 필기의 결과물도 엄청 진하다. 서양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이 양피지 위에 만년필로 글을 쓰는 장면이 연상될만큼, 매우 농도 짙은 진한 흑색의 글씨가 써졌다. 또한, 속기 시에도 발군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다만, <JF-1.0>의 경우, 잉크의 소모량이 0.7 리필심인 <JF-0.7>의 그것에 비해 훨씬 빠르게 소모될 것으로 추정된다. (※ 실제로 그러하다.)




* 에너겔(ENERGEL)


나는 위에서 링크한 마하펜에 관한 기사를 읽기 전에는  에너겔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약간의 구글링을 통해, 이 볼펜의 제조사가 펜텔(Pentel)이라는 일본 기업이며, 중고등학생 때 많은 학생들이 사용했던 검정색 펜텔 제도 샤프를 만들던 바로 그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키피디아를 검색해보니, 1946년 설립된 회사다. 에너겔(ENERGEL)은 이 회사가 판매하는 중성펜 제품의 브랜드 이름이다.

 유성펜의 경우 비쿠냐(VICUNA), 수성펜의 경우 트라디오(Tradio) TRJ50 이라는 이름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 같다.


에너겔 볼펜을 사용해보고 받은 느낌을 정리해보자면,

* 필기감이 우선 상당히 부드럽다. 손에 힘을 빼고 써도 짙은 농도의 흑색 글씨가 쉽고 빠르게 쓰여졌다. 

* 사라사도 부드럽지만, 에너겔의 필기감은 사라사의 그것과는 미묘한 느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잉크 마르는 체감 속도가 사라사에 비해 살짝 더 빠른 것 같다. 글씨를 쓰자마자 잉크가 대단히 빨리 건조된다. 

※ 0.7 굵기의 에너겔 BL107 모델과 달리, 0.5 굵기의 BNL105 모델의 경우, 펜촉이 니들포인트이다. 하지만, 니들포인트임에도 불구하고 튼튼하게 생겼고 필기시 안정감이 느껴졌는데, 육안으로 보기에도 펜촉의 직경이 제법 굵고 펜촉 끝부분은 다시 원뿔모양으로 좁아지고 있음이 눈에 띈다.


[사진] 펜텔(Pentel) 에너겔(ENERGEL) BL107 / BLN105, ※ BLN105의 N은 니들(Niddle), 105는 0.5를 의미하는 듯함


결과적으로, 고시 수험생들 사이에서 선호될만한 볼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잉크의 선명도나 필기 결과물은 사라사와 비교해서 그리 큰 차이를 모르겠는데, 느껴지는 필기감이 사라사와는 필기감이 마묘하게 다르다. 호기심에 사라사와 에너겔을 비교해보니 몇가지 차이점이 눈에 띄었다.


< 사라사와 에너겔의 비교 관찰 >

첫째로, 그립밑의 펜촉을 보호하는 원뿔형 플라스틱 부분이 에너길이 더 짧다. 이로 인해서 에너겔의 경우,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종이에 더 바짝 가깝게 대고 글을 쓰는 셈이 된다.


[사진] 사라사 하이페젤 볼펜과 에너겔 BL77-A 볼펜의 헤드 부분(head part)의 길이 차이



둘째로, 볼펜의 그립 부분의 재질 차이가 느껴졌다. 볼펜을 잡았을 때, 엄지, 집게손가락 및 중지와 볼펜이 닿는 부위인 그립은 두 볼펜 모두 고무 성분으로 되어있는데, 에너겔의 그립은 사라사보다 더 단단하고 매끄러운 편이다. 사라사의 그립은 애너겔에 비해 쿠션감이 있으며 고무의 질감이 더 강하고 매끄러운 느낌은 나지 않는다.


[사진] 사라사 하이페젤 볼펜과 에너겔 BL77-A 볼펜의 그립 부분(grip part) 비교



셋째로, 에너겔의 스프링이 사라사의 것보다 직경이 더 넓고 길이도 더 길었다.


[사진] 사라사 하이페젤 볼펜과 에너겔 BL77-A 볼펜의 스프링(spring) 비교



마지막으로, 리필심의 경우, 에너겔과 사라사의 리필심이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구성은 에너겔의 리필심 쪽이 두가지 정도의 부품이 더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눈대중으로 보기에 직경은 거의 같아 보이고, 길이는 에너겔의 것이 아주 미세하게 조금 더 길어 보인다. 이로 인해 에너겔과 사라사 간에 리필심이 상호 호환된다. 에너겔에 사라사 리필심을 넣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진] 제트스트림, 에너겔, 사라사 볼펜의  리필심(ink catridge) 비교




* 제트스트림(JETSTREAM)


마하펜이 수성펜, 사라사와 에너겔이 중성펜임에 비해, 제트스트림은 유성펜이다. 앞에서 유성볼펜의 단점으로 약간 무겁고 뻑뻑한 필기감을 언급했는데, 제트스트림은 유성펜 치고는 상당히 부드러운 필기감을 보여주었다. 손에 힘을 빼고 필기를 해도 무리없이 글씨가 잘 써졌다. 예전에 유성볼펜을 쓸때면, 잉크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안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때에는 공책의 다른 여백에다가 볼펜 잡은 손에 힘을 줘서 잉크가 나올때까지 <돼지꼬리 또는 지그재그를 빠른 속도로 그어대곤> 했었던 경험이 있다. 제트스트림의 경우, 이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이는 마하펜이 기존의 수성잉크의 단점을 보완한 개량형 수성잉크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트스트림 역시 기존의 유성잉크의 단점을 보완한 개량형 유성잉크를 사용하기 때문[각주:7]이라고 한다.


제트스트림은 수험생들 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은 이유로 중고교 및 대학생 사용자들에게도 매력적일 것 같다.


첫째로, 유성볼펜은 중성볼펜에 비해 기본적으로 학생유저들의 니즈(needs)에 부합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학생들의 경우 형광펜의 사용빈도 및 교과서 위에 필기하는 빈도가 높다는 데 있다.

중성펜의 경우, 필기 직후에 형광펜을 그으면 다소 보기 싫게 번진다. 검정색과 형광색의 혼합이 일어나고, 형광펜의 촉에도 시커먼 자국이 남는데, 이는 형광펜의 발색에도 안좋은 영향을 준다.

또한, 용지 표면이 살짝 코팅된 매끄러운 질감의 종이를 사용한 교과서(예를 들면 맥그로힐 교과서)의 경우, 중성펜은 유성펜보다 잉크가 마르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결과적으로, 번지거나 손에 묻거나, 쓰고 나서 바로 덮으면 반대쪽 용지에 일종의 데칼코마니 효과가 생길 위험이 더 크다. 

비슷한 맥락에서, 교과서의 특정 부분에 자를 대고 줄을 긋기에도 유성펜이 경쟁우위를 가진다. 중성펜은 유성펜에 비해 자에 잉크가 묻거나, 종이 위의 다른 곳으로 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이미 그어 놓은 선의 잉크가 번지는 참사가 발생할 위험이 더 높다.


둘째로, 디자인 측면에서 볼때, 볼펜이 전체적으로 매끈하면서 맵시가 있어 상당히 이쁘게 생겼다. 에너겔과 사라사의 외관상 느낌이 살짝 사무적이라면, 제트스트림의 경우 상당히 팬시상품적인 분위기가 엿보인다. 펜대(body)의 색상도 가지각색으로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특히 여학생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다양한 색상의 펜대로 출시된 제트스트림, 펜대의 색상만 바꿔서 계속 신제품의 형태로 출시하는 것 같다.


여기에 더해서, 유성볼펜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필기감에 잉크가 끊김이 없고 뭉쳐서 나오는 경우도 드문 것 같아서, 수험생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필기결과물의 진한 정도에 있어서는 사라사나 에너겔 같은 중성펜이 확실히 더 우위에 있어 보인다. 아무리 손에 힘을 주고 꾹꾹 눌러쓴다고 하더라도 제트스트림으로는 사라사/에너겔 수준의 농도 짙은 진한 흑색 글씨를 얻을 수 없었다. 제트스트림이 다소 건조한 느낌이라면, 사라사/에너겔의 경우 다소 촉촉한 느낌을 받게 된다.


※ 제트스트림의 리필심은 사라사/에너겔의 것에 비해 가늘지만 길이는 거의 같다. 직경이 다름에도 길이가 같아서인지, 제트스트림의 리필심을 사라사/에너겔에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가능한 것 같다.(위 에너겔 설명에 첨부된 제트스트림, 에너겔, 사라사 볼펜의 리필심 비교 사진을 참고할 것)

다만, 성인층을 타겟고객으로 설정한 듯한 SXN-210, 310 과 같은 모델의 경우, 사라사/에너겔의 리필심이 맞지 않는다.




사용자의 환경 및 기호/취향의 차이별로 선호 볼펜도 다를 것임


각 문구회사별로 수성, 중성, 유성볼펜을 모두 제조/판매하는 데는 그만큼 볼펜 사용자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기호와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각각의 잉크별로 고유의 장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잉크를 사용하는 특정 볼펜이 무조건 좋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일단, 나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선택은 1차적으로 마하펜과 에너겔이었다. 마하펜의 경우, <슥쓱>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 예리한 듯한 필기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마하펜 original> 한 다스(12개)를 추가로 더 구매했다.


[사진] 추가로 구매한 마하펜 한 다스(12개)


그런데, 막상 마하펜을 며칠동안 집중적으로 사용해보니 그립과 맞닿는 중지의 끝마디 부분에 살짝 굳은 살이 생기는 것 같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마하펜은 그립부분이 고무재질로 되어 있지 않다. 타회사의 다른 수성펜도 그립이 비슷한 방식인 걸로 봐서 수성펜은 주로 이런 형태로 제작되는 것 같다.


[이미지] 굳은 살이 생기는 그립과 맞닿는 중지 끝마디 부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마하펜을 쥐고 빠른 속도로 속필을 하는 경우, 중지의 끝마디와 펜의 그립이 맞닿는 부위에 약간 어색함을 느낀다. 팔도 조금 쉽게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소 낯선 방식의 볼펜을 사용하다보니, 내가 마하펜으로 글씨를 쓸 때 엄지와 집게 손가락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더 많이 주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적응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라사 볼펜에 부착된 고무그립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완충 효과가 생각보다 큰 것이었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마하펜에도 사라사 볼펜처럼 고무재질 그립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에너겔의 경우, 펜대(body)의 구조적 차이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라사와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는데,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에너겔 쪽의 느낌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잉크가 사라사보다 빨리 건조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취향에 따라 사라사의 느낌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진] 펜텔(Pentel) 에너겔(ENERGEL) BL77


내가 이번에 구매해 사용해 본 에너겔은 0.7 굵기의 BL107이라는 모델인데, 이 모델보다 가격이 조금 더 높으면서 펜대(body)가 더 무거워보이는 BL77이라는 모델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펜대의 무게감이 있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한 동안 사용할 분량을 쟁여놓을 요량으로 BL77 모델로 몇 자루를 더 구매했다. 아울러 여분의 에너겔 리필심(LR7)도 넉넉하게 구매해 두었다. 내 최종 선택은 당분간 에너겔이 될 것 같다.



  1. 포털검색을 해보면 마하펜에 관한 많은 기사를 찾을 수 있다. 그만큼 회사에서 야심차게 주력으로 미는 제품이라 생각된다. [본문으로]
  2.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보니, 1981년 설립된 문구전문회사이다. http://www.morningglory.co.kr/Sub_Modules/sub01/sub02.asp [본문으로]
  3. 기사에 따르면, 2년간의 연구, 개발 및 5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되었다고 하는 것 같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industry/200908/e2009080217050647730.htm [본문으로]
  4. 다만, 표면이 매끄러운 종이에 필기하면 그만큼 건조가 늦다. 하지만, 중성펜 역시 이런 단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반용지에 필기시에는 중성펜과 별다른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성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본문으로]
  5. http://www.zebra.co.jp/main/history.html [본문으로]
  6. 회사에서는 5년간의 연구 끝에 유성잉크의 또렷함과 젤잉크의 가볍고 부드러운 장점을 살린 잉크라고 홍보하고 있다. http://suraripen.blog.me/20112746048 [본문으로]
  7. 온라인 문구숍 등에서는 제트스트림이 점도를 낮추고 윤활성을 높인 용제를 새롭게 사용하여 필기시 펜촉과 종이와의 마찰계수를 기존 유성펜에 비해 절반수준으로 줄여서 한결 가벼운 필기감을 선사한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그냥 부드러운 유성볼펜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본문으로]
Posted by 200L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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