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

HP-12C - 초장수 베스트셀러 재무계산기

200LXer 2013. 3. 22. 00:18

재무계산기라는 것이 있다. 흔히들 계산기라고 하면 사칙연산 중심의 계산기(이른바 쌀집 계산기) 또는 공학용(과학기술용) 계산기를 떠올리기 때문에 재무계산기는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계산기일 것이다. 대출/상환 계산, 연금설계, 기업의 현금흐름 분석 등을 계산하는데 최적화된 계산기이다. 모기지(mortgage) 대출이 발달한 미국의 부동산 브로커들에게는 재무계산기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 도구와 같은 것이었고, 각종 금융관련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금융계산기는 널리 쓰여왔다. 


TVM(Time Value Money)이라고 해서 n(기간), i(이자율), PV(현재가치,Present Value), FV(미래가치, Future Value) , IRR, NPV 같은 것들을 몇번의 키 입력으로 순식간에 계산해 낸다. 

월스트리트의 위상이 높은 만큼, 재무계산기 역시 미국 회사의 제품이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社의 BA-II 라는 계산기도 있지만, 시장에서 가장 고급제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휴렛-팩커드(HP)社의 HP-12C 라는 계산기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HP-12C 계산기는 출시된지 벌써 30년을 훌쩍 넘긴 제품이라는 것이다. 1981년에 처음 출시된 이후 2013년 지금 시점까지 배터리 규격이라든지 내부 칩 등에 있어 다소간의 변화들이 있긴 했지만, 처음 생산된 뼈대를 거의 유지해오고 있다. 몸체의 색상, 버튼의 폰트 상에 약간의 변경 외에는 기본 외형 역시 81년 디자인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다. 쉽게 말하면, 1981년에 생산된 것을 version 1.0이라고 하면, 2013년의 것은 version 1.6~7 정도, 즉, version 2.0으로 넘어가지 않은 상태라고나 할까? 30년 이상의 초 장기간 동안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 스테디셀러 계산기로서, 모르긴 몰라도 아마 HP社의 제품들 중에서 가장 오랜기간 동안 생산되는 제품중 하나일 것이다.

 [ 코밸리스 사업부가 발행한 Key Notes[각주:1] (September-December 1981 Vol. 5 No. 3)에 소개된 HP-12C]


HP-12C 이후, HP-19B 등 기능과 성능 면에서 HP-12C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후속 기종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후속기종들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HP-12C는 2013년 현재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재무계산기이다. 그것도 최고급품으로 인식된다. 최근에는 아이폰 및 아이패드용 HP-12C 계산기 앱(App)도 나왔다. 


와이셔츠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가로형 외형을 가진 HP-12C 계산기는 심플한 멋이 있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멋스럽다. 쓰면 쓸수록 매력있는 계산기이다. 이베이(eBay)에서 20~30년전에 생산된 제품들이 여전히 쌩쌩한 모습으로 거래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되는 것으로 미루어볼때 내구성도 뛰어난 것 같다. (원래 미제의 튼튼함은 알아주는 것이지만, 요즘 생산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마데인차이나이다.)


사실, 내가 HP-12C를 선호하는 데는 HP-12C를 개발한 사업부가 95lx / 200lx를 탄생시킨 코밸리스 사업부(Corvallis Division)[각주:2]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코밸리스 사업부는 HP내에서 많은 명작 계산기들을 개발해낸 계산기에 월등한 핵심역량을 가진 사업부였다.[각주:3] 이런 이유로 95lx / 200lx에 내장된 재무계산기 소프트웨어에는 HP-12C 계산기 개발부서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각주:4] 코밸리스 사업부의 계산기 역량이 200lx에 그대로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각주:5] 

아마 HP내의 다른 사업부서, 예를 들어 PC사업부 같은 곳에서 95/200lx를 개발했더라면, 200lx에는 지금과 같은 강력한 재무 계산기가 결코 탑재되지 못했을 것 같다.[각주:6] HP에서 생산된 팜탑, 노트북, PDA 등 거의 모든 모바일 컴퓨팅 기기들 중에서 HP-12C 수준의 강력한 재무 계산기 기능이 내장된 기기는 95lx/200lx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HP-12C 계산기는 내부 칩들이 간소화되고 연산속도가 향상되었다고 하는 (아마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HP-12C Platinum(몸체의 윗 부분이 기존의 금색에서 은색으로 바뀌었다.) 이라는 것인데, 나는 오히려 예전의 오리지널 HP-12C 모델(금색 외관)을 하나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luxury goods에 해당하는 가격이 비싼 고급 가방, 지갑 등을 일컬어 명품(名品)이라 칭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HP-12C 같은 제품이야말로 masterpiece 라는 본연의 의미에 부합하는 진정한 명품(名品)이 아닐까?[각주:7]

  1. HP's Corvallis Division began publishing Key Notes in January of 1977. Key Notes had a worldwide circulation and replaced the US newsletter HP-65 Key Note. Key Notes was distributed to purchasers of Corvallis Division products and to others who subscribed separately to the newsletter. Key Notes published information on new products, price changes, programming tips, programming libraries and other articles of interest to end users. 출처: http://www.hpmuseum.net/exhibit.php?content=Key%20Notes [본문으로]
  2. 코밸리스 사업부에 대해서는 http://www.hpmuseum.net/divisions.php?did=18 [본문으로]
  3. http://www.hpmuseum.net/exhibit.php?class=2&cat=14 페이지 참고 [본문으로]
  4. 여기에 관련해서는http://200lx.tistory.com/14 에 보다 자세한 설명 [본문으로]
  5. 95lx 개발단계에서 초기 컨셉은 HP-19B계산기와 유사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스프레드 쉬트 등과 결합되면서 제품컨셉과 개발방향이 수정됨, [본문으로]
  6. 개발관련에 관련해서 역시 http://200lx.tistory.com/14 에 보다 자세한 설명 [본문으로]
  7. 위키피디아를 참고했다. 위키피디아에 수록된 Masterpiece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Masterpiece (or chef d'œuvre) in modern usage refers to a creation that has been given much critical praise, especially one that is considered the greatest work of a person's career or to a work of outstanding creativity, skill, or workmanship.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asterpiece [본문으로]